1788년

1788년은 18세기 후반에 속하는 해로, 세계사적으로 근대 국가의 기틀이 다져지고 시민 혁명의 전운이 감돌던 격동의 시기였다. 동양에서는 조선이 영조에 이어 정조의 치세 아래 문예 부흥과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고 있었으며, 서양에서는 미국이 헌법을 비준하여 연방국가로서의 체제를 확립했다. 프랑스는 대혁명을 목전에 두고 심각한 재정 위기와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었고, 영국은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본격적인 식민 개척을 시작했다.

조선에서는 정조 재위 12년째를 맞이한 해였다. 이 시기 정조는 탕평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며 왕권을 강화하고 붕당의 대립을 완화하고자 노력했다. 특히 1788년에는 남인 계열의 핵심 인물인 채제공이 우의정에 임명되었는데, 이는 오랫동안 권력의 핵심에서 소외되었던 남인 세력이 중앙 정계로 복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구도의 변화는 이후 정조가 규장각을 중심으로 한 학문 진흥과 신도시 화성 건설 등의 개혁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정치적 기반으로 작용했다.

유럽 대륙에서는 프랑스 대혁명의 전조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프랑스 왕국은 계속된 대외 전쟁과 궁정의 사치로 인해 막대한 국가 부채를 안고 있었고, 1788년에 이르러 재정 위기는 극에 달했다. 전국적인 흉작으로 인해 빵값이 폭등하면서 민중의 불만이 고조되었고, 특권층인 귀족과 성직자들은 왕실의 새로운 과세 시도에 반발했다. 결국 위기에 몰린 루이 16세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이듬해인 1789년에 신분제 의회인 삼부회를 소집할 것을 1788년에 결정하게 되며, 이는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하는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한편, 문화적으로는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그의 생애 마지막 세 개의 교향곡(39번, 40번, 41번 '주피터')을 이 해 여름 동안 단기간에 완성하는 역사적 성취를 남겼다.

북아메리카에서는 신생 독립국인 미국이 현대적 민주주의 국가의 뼈대를 완성했다. 1787년 필라델피아 제헌회의에서 작성된 미국 헌법이 각 주의 비준 과정을 거치고 있었는데, 1788년 6월 21일 뉴햄프셔주가 9번째로 헌법을 비준함에 따라 마침내 미국 헌법이 공식적으로 발효되었다. 이로써 강력한 권한을 가진 연방 정부의 창설이 법적으로 보장되었으며, 조지 워싱턴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하기 위한 최초의 미국 대통령 선거 절차가 같은 해 12월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미국의 정치 체제가 느슨한 연합규약 체제에서 강력한 연방헌법 체제로 전환된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에 있어서도 1788년은 결정적인 분기점이다. 아서 필립 총독이 이끄는 영국의 '제1함대(First Fleet)'가 죄수와 병사, 개척민들을 태우고 1788년 1월 26일 오스트레일리아의 포트잭슨(현재의 시드니 만)에 상륙했다. 영국은 이곳을 유배지 겸 새로운 식민지로 삼았으며, 이는 유럽인에 의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최초의 영구 정착지 건설이었다. 훗날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은 이 함대가 상륙한 1월 26일을 기념하여 '오스트레일리아의 날(Australia Day)'로 지정했으나, 대륙에 원래 거주하고 있던 애보리진 등 원주민들에게는 영토 상실과 탄압이 시작된 비극적인 해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