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5년

1775년은 세계사적으로 근대 시민 사회의 태동을 알리는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특히 북미 대륙에서 영국 본토의 식민지 정책에 반발하며 미국 독립 전쟁이 발발한 해로 기억된다. 4월 19일, 매사추세츠주의 렉싱턴과 콩코드에서 영국군과 식민지 민병대 사이의 첫 무력 충돌이 발생하면서 8년간에 걸친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이 사건은 단순히 식민지의 반란을 넘어, 자유와 평등이라는 계몽주의 가치를 현실 정치에 구현하려는 최초의 시도로 평가받는다.

전쟁의 발발 직후인 5월, 필라델피아에서 제2차 대륙회의가 소집되었다. 이 회의에서 식민지 대표들은 대륙군을 창설하기로 결의하였으며, 6월에는 조지 워싱턴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같은 달 17일에는 보스턴 인근에서 벙커힐 전투가 벌어져 양측에 막대한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비록 전술적으로는 영국군이 승리했으나, 식민지군은 정규군을 상대로 충분히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으며, 이는 독립을 향한 여론을 결집하는 계기가 되었다.

조선 왕조에서는 영조 51년에 해당하며, 장기 집권 중이던 영조의 치세가 막바지에 다다른 시기였다. 영조는 노환과 병환으로 국정을 돌보기 어려워지자, 1775년 음력 12월에 세손이었던 산(훗날의 정조)에게 대리청정을 명하였다. 이는 훗날 정조가 즉위하여 규장각을 설치하고 탕평책을 계승하는 등 조선의 문예 부흥기를 이끄는 토대가 마련된 중요한 정치적 결정이었다. 당시 조정 내에서는 세손의 대리청정을 반대하는 세력의 저항이 있었으나, 영조는 이를 관철하며 왕권의 안정적인 승계를 준비하였다.

과학과 문화 분야에서도 후대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진전과 사건들이 있었다. 영국의 제임스 와트는 매슈 볼턴과 동업을 시작하며 증기 기관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산업 혁명의 기틀을 다졌다. 화학 분야에서는 조지프 프리스틀리와 카를 빌헬름 셸레가 산소의 존재와 성질을 규명하며 근대 화학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었다. 또한, 영국의 소설가 제인 오스틴과 프랑스의 물리학자 앙드레 마리 앙페르가 이해에 태어나 인류 문화와 과학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이처럼 1775년은 서구의 민주주의적 가치 부상과 산업적 변혁, 그리고 동양의 전통 체제 내에서의 권력 이양이 교차하며 근대 세계의 윤곽이 그려지기 시작한 해였다. 유럽 각국은 식민지 쟁탈전과 내부적인 절대왕정의 위기 속에서 격변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흐름은 18세기 후반 세계 질서의 재편으로 이어지는 가교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