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0년은 18세기가 시작된 지 20년째 되는 해로, 서구권에서는 근대 자본주의의 취약성을 드러낸 대규모 경제 위기가 발생했으며 동아시아에서는 중요한 왕권 교체가 일어난 시기다. 그레고리력으로는 월요일, 율리우스력으로는 금요일에 시작된 윤년이다. 이 해는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근대 세계의 기틀을 흔드는 굵직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며 역사적 전환점을 맞이했다.
조선에서는 제19대 국왕 숙종이 재위 46년 만에 승하하고, 그의 장남인 경종이 제20대 국왕으로 즉위했다. 숙종의 통치는 환국 정치를 통한 강력한 왕권 강화와 대동법의 확산 등으로 요약되는데, 그의 죽음은 조선 조정 내 노론과 소론 사이의 권력 투쟁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경종은 즉위 직후부터 건강 문제와 후사 문제로 인해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렸으며, 이는 훗날 영조의 즉위와 탕평책으로 이어지는 긴박한 정치사의 서막이었다.
유럽 경제사에서 1720년은 '거품의 해'로 기억된다. 영국에서는 남해회사(South Sea Company)의 주가가 터무니없이 폭등했다가 한순간에 폭락한 '남해 거품 사건'이 발생하여 수많은 투자자가 파산하고 사회적 혼란이 극에 달했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에서도 존 로가 주도한 미시시피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며 '미시시피 거품 사건'이 터졌다. 이 두 사건은 근대 자본주의 초기 단계에서 발생한 최초의 대규모 금융 위기로 기록되며, 이후 국가 차원의 금융 규제와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유럽의 국제 정세는 전쟁의 종식과 세력 균형의 재편으로 요약된다. 스페인과 사국동맹(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사이의 사국동맹 전쟁이 헤이그 조약 체결로 마무리되었다. 이를 통해 스페인은 이탈리아 내 영토 권리를 포기하고 유럽의 경계가 다시 확정되었다. 북유럽에서는 대북방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르며 덴마크-노르웨이와 스웨덴 사이에 프레데릭스보르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로써 스웨덴의 발트해 패권은 쇠퇴하고 러시아가 새로운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사회 및 과학 분야에서도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프랑스 마르세유에서는 '마르세유 대역병'이 발생하여 도시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사망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이는 서유럽에서 발생한 마지막 대규모 선페스트 유행 중 하나로 꼽힌다. 아시아에서는 청나라 강희제가 군대를 보내 티베트의 라사를 점령하고 달라이 라마 7세를 옹립하며 티베트에 대한 청의 지배력을 공고히 했다. 과학계에서는 영국의 천문학자 에드먼드 헬리가 제2대 왕립 천문관으로 임명되어 천체 관측 역사에 기여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