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4년

1704년은 18세기 초입으로 서구에서는 왕위 계승 전쟁이 격화되고, 동아시아에서는 국가 체제 정비와 내치에 집중하던 시기였다. 유럽에서는 강대국 간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며 대규모 전투가 빈번하게 발생했고, 이는 제국들의 세력 판도를 재편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반도에서는 조선 숙종 재위 30년을 맞이하여 국방력 강화와 사회 질서 확립을 위한 정책적 노력이 지속되었다.

조선에서는 숙종의 주도 아래 북한산성 수축과 수도 방어 체계 정비에 관한 논의가 심화되었다. 전란의 위협에 대비해 성곽을 보수하고 군사 훈련을 강화하는 한편, 상평통보의 유통을 통해 화폐 경제의 확산을 꾀하였다. 또한, 대동법의 전국적인 실시 이후 조세 행정의 안정을 도모하였으며, 당쟁의 혼란 속에서도 왕권을 강화하여 국정의 중심을 잡으려는 정치적 시도가 계속되었다.

유럽 대륙에서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인 사건들이 일어났다. 1704년 8월 13일, 말버러 공작이 이끄는 영국-오스트리아 연합군이 블렌하임 전투에서 프랑스-바이에른 연합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투는 태양왕 루이 14세의 유럽 패권 장악 시도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으며, 영국이 유럽 정세의 주도권을 잡는 전환점이 되었다. 같은 해 8월 초에는 영국 해군이 스페인 남단의 지브롤터를 점령하여 지중해로 향하는 전략적 요충지를 확보하였다.

북유럽과 동유럽에서는 러시아와 스웨덴이 격돌한 대북방 전쟁이 이어졌다. 표트르 대제가 이끄는 러시아군은 스웨덴의 중요 요새인 나르바를 함락하며 발트해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였다. 이는 러시아가 서구화 정책과 군사 개혁을 바탕으로 유럽의 신흥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폴란드 왕위 문제를 둘러싼 갈등 역시 심화되어 동유럽 전역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었다.

과학과 문화 측면에서는 근대 과학의 이정표가 될 만한 성과가 나타났다. 아이작 뉴턴은 빛의 굴절, 반사, 색채의 성질을 집대성한 저서 『광학(Opticks)』을 출간하였다. 이 책은 고전 역학의 확립에 이어 광학 분야에서도 뉴턴의 권위를 확고히 했으며, 실험 과학의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일본에서는 에도 시대 겐로쿠 연호가 호에이 연호로 바뀌며 사회적 변동기를 맞이하였고, 상업 자본의 성장과 더불어 독자적인 도시 문화가 성숙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