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4년은 목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며, 그레고리력과 율리우스력에 따른 연도 표기이다. 동양의 간지로는 갑오년(甲午年)에 해당하며, 한국사 연표상으로는 조선 효종 5년이다. 이 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치, 군사, 과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판도 변화를 가져온 사건들이 다수 발생한 시기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에서는 청나라의 요청으로 러시아군을 토벌하기 위해 조총 부대를 파견한 제1차 나선정벌(羅禪征伐)이 단행되었다. 당시 러시아 제국(나선)은 시베리아를 넘어 흑룡강 방면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는데, 청나라가 이를 독자적으로 저지하기 어려워지자 조선에 원군을 요청했다. 이에 조선 조정은 변급(邊岌)을 영장으로 삼아 조총군 100명과 초관, 기고수 등을 포함한 약 150명의 정예 병력을 파병했다. 조선군은 4월에 영고탑에 도착하여 청나라 군대와 합류한 뒤, 6월 흑룡강 어귀에서 러시아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이는 조선 조총 부대의 우수한 사격술과 전투 능력을 입증한 사건이었으나, 효종이 북벌을 위해 양성한 군사력이 역설적으로 주적인 청나라를 돕는 데 사용된 역사적 사례로 남았다.
유럽 정세에서도 굵직한 변화가 있었다. 4월에는 잉글랜드 공화국과 네덜란드 공화국 사이에 웨스트민스터 조약이 체결되어 무역 항로를 둘러싼 제1차 영국-네덜란드 전쟁이 종결되었다. 프랑스에서는 '태양왕' 루이 14세가 랭스 대성당에서 공식적인 대관식을 치르며 절대 왕정의 상징적 기반을 다졌다. 북유럽에서는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이 왕위에서 물러나고 사촌인 칼 10세 구스타브가 그 뒤를 이었다. 크리스티나는 퇴위 후 개신교 국가인 스웨덴을 떠나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로마로 이주하여 당시 유럽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과학사적으로 1654년은 진공과 기압에 대한 인류의 이해가 획기적으로 진전된 해이다. 독일의 물리학자이자 마그데부르크의 시장이었던 오토 폰 게리케는 유명한 '마그데부르크 반구' 실험을 실시했다. 그는 두 개의 구리 반구를 맞붙여 내부의 공기를 펌프로 빼내 진공 상태를 만든 뒤, 양쪽에서 8마리씩 총 16마리의 말을 이용하여 잡아당겨도 반구가 쉽게 떨어지지 않음을 보여줌으로써 대기압의 막강한 위력을 증명했다. 수학 분야에서는 블레즈 파스칼과 피에르 드 페르마가 서신을 교환하며 도박의 중단 문제(분배 문제) 등을 논의했는데, 학계에서는 이 시점을 현대 확률론의 태동기로 평가한다.
아메리카 대륙과 관련된 식민지 역사에서도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다. 포르투갈이 네덜란드가 점령하고 있던 브라질 북동부의 헤시피(Recife)를 탈환하여 네덜란드 서인도 회사의 세력을 남미에서 축출했다. 이 과정에서 브라질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이 종교 재판 등의 박해를 피해 뉴암스테르담(현재의 미국 뉴욕)으로 이주했는데, 이들이 도착한 1654년은 북미 유대인 공동체 역사의 실질적인 시작점으로 여겨진다. 또한 동유럽에서는 우크라이나의 카자크 지도자 보흐단 흐멜니츠키가 페레야슬라프 조약을 통해 러시아 차르국의 보호를 받기로 결정하면서, 훗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관계의 역사적 연원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