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1년은 17세기의 중반으로 향하는 시기로,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중대한 정치적, 사회적 변화와 갈등이 교차하던 해이다. 유럽에서는 1618년에 발발한 30년 전쟁이 지속되며 파괴적인 참상이 이어지고 있었고, 영국에서는 잉글랜드 내전의 전운이 짙어지고 있었다. 동아시아에서는 청나라가 명나라를 압박하며 대륙의 패권을 장악해 나가고 있었으며, 조선과 일본은 각자의 체제를 정비하고 대외 관계를 재편하는 과정에 있었다.
조선에서는 인조 19년에 해당하는 해로, 병자호란의 참패 이후 국가적 상처를 수습하고 청나라의 노골적인 내정 간섭을 견뎌야 했던 시기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등은 여전히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억류되어 있었으며, 이들은 단순한 인질을 넘어 조선과 청나라 사이의 복잡한 외교적 창구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이 시기 명나라와 은밀히 연락을 취하며 항청 활동을 벌이던 임경업 장군의 행보가 청나라에 발각될 위기에 처하는 등, 명과 청의 교체기 속에서 조선의 외교적 줄타기가 위태롭게 이어지고 있었다.
유럽, 특히 영국과 아일랜드에서는 훗날 청교도 혁명으로 불리는 잉글랜드 내전으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사건들이 발생했다. 1641년 10월, 아일랜드에서는 가톨릭 교도들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개신교 이주민들에 대항하여 아일랜드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은 영국 내 정치적 긴장을 극도로 끌어올렸고, 같은 해 11월 잉글랜드 의회는 국왕 찰스 1세의 실정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대항의서를 통과시켰다. 이는 왕당파와 의회파의 대립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만들었다.
일본의 에도 막부는 이 해를 기점으로 쇄국 정책의 틀을 확고히 다졌다. 도쿠가와 이에미쓰가 통치하던 막부는 1641년, 히라도에 있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무역관을 나가사키의 인공 섬인 데지마로 강제 이전시켰다. 앞서 포르투갈인들을 추방했던 막부는 이 조치를 통해 서양 국가 중 오직 네덜란드와만 교역을 허용하되, 그들의 거주와 활동 반경을 데지마 내부로 엄격하게 통제했다. 이로써 19세기 중반 개항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독특한 대외 정책인 쇄국 체제가 완성되었다.
사상과 철학, 그리고 식민지 개척 분야에서도 1641년은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는 자신의 형이상학적 사유를 집대성한 명저인 제1철학에 관한 성찰을 라틴어로 출간했다. 이 저술은 근대 합리론의 초석을 다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한편 북아메리카에서는 매사추세츠만 식민지에서 북미 최초의 성문 법전 중 하나인 매사추세츠 자유 법령이 채택되어, 초기 아메리카 식민지의 법적, 제도적 기틀이 마련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