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번째 공화국은 일반적으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맹(소련)의 구성 공화국 중 하나였던 '카렐리야-핀란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Karelo-Finnish SSR)'을 지칭한다. 소련은 1956년부터 1991년 해체될 때까지 15개의 공화국 체제를 유지했으나, 1940년부터 1956년 사이에는 이 공화국을 포함하여 총 16개의 구성 공화국이 존재했다. 이는 소련 역사에서 특정 시기에만 나타났던 독특한 국가 형태였다.
이 공화국의 탄생은 제2차 세계대전 초기 겨울 전쟁의 결과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1940년 3월, 소련은 핀란드와의 전쟁 이후 체결된 모스크바 평화 조약에 따라 획득한 카렐리야 지협 등의 영토와 기존의 카렐리야 자치 공화국을 통합하여 카렐리야-핀란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했다. 당시 이 공화국의 수립은 핀란드 전체를 공산화하여 소련의 영향권 아래 두려는 스탈린의 정치적 의도가 반영된 것이었으며, 핀란드 출신의 공산주의자 오토 빌레 쿠시넨이 수장으로 임명되었다.
행정적 지위 면에서 이 공화국은 우크라이나나 벨라루스와 같은 다른 연방 공화국들과 동등한 권한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인구 구조상으로는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 공화국 명칭에는 '핀란드'와 '카렐리야'가 포함되어 있었으나, 실제 핀란드인과 카렐리야인의 비중은 전체 인구의 20%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대다수는 러시아인이었다. 이러한 인구 불균형은 공화국이 민족 자결주의에 기초한 연방제라는 명분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1956년 7월 16일, 니키타 흐루쇼프가 이끄는 소련 정부는 카렐리야-핀란드 공화국을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RSFSR) 산하의 '카렐리야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격하했다. 이러한 조치는 표면적으로는 공화국 내 러시아인의 압도적인 비율과 경제적 효율성을 이유로 내세웠으나, 실질적으로는 냉전 시기 핀란드와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고 중립 국화를 유도하기 위한 외교적 포석이었다. 이로써 소련은 다시 15개 공화국 체제로 돌아가게 되었다.
오늘날 16번째 공화국의 흔적은 모스크바에 위치한 전러시아 박람회장(VDNKh)의 '민족 우호의 분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분수대에는 소련의 구성 공화국을 상징하는 여인 조각상 16개가 세워져 있는데, 이는 분수가 완공될 당시 카렐리야-핀란드 공화국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이다. 16번째 공화국은 냉전 초기 소련의 영토 확장 정책과 민족 정체성 정립 과정에서 발생한 과도기적 산물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