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년

158년은 서기 2세기의 58번째 해이며, 육십간지로는 무술(戊戌)년에 해당한다. 이 시기는 로마 제국의 안정기와 동아시아 국가들의 체제 정비기가 맞물린 시점이다. 유럽과 아시아의 주요 국가들은 각기 다른 정치적 변동과 사회적 사건들을 겪으며 역사의 흐름을 이어갔다.

로마 제국에서는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가 통치하던 시기였다. 이해의 로마 집정관은 섹스투스 술피키우스 테르툴루스와 퀸투스 티네이우스 사케르도스였다. 당시 로마는 소위 '오현제 시대'의 평화로운 기조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제국의 북방 국경 지대에서는 점차 이민족의 압박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내치에 집중하며 법률 정비와 재정 안정을 꾀했으나, 그의 치세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향후 닥쳐올 갈등의 전조가 나타나기도 했다.

중국 후한에서는 환제가 재위하고 있었으며, 연호는 연희(延熹) 원년으로 개원되었다. 당시 후한 조정은 외척 세력인 대장군 양기(梁冀)의 권세가 극도에 달해 황제조차 그를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환제는 양기의 전횡에 맞서기 위해 환관 세력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는데, 이는 훗날 환관들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는 '십상시' 문제의 단초를 제공했다. 또한, 이해 여름에는 중국 대륙에서 일식이 관측되었다는 기록이 후한서에 남아 있다.

한반도의 고구려에서는 제7대 차대왕이 재위 13년째를 맞이하고 있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차대왕은 성품이 잔인하고 성급하여 백성들을 위협하고 권력을 남용하는 정치를 펼쳤다. 이로 인해 왕실 내부와 귀족 사회에서는 차대왕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었으며, 이는 훗날 신대왕의 즉위로 이어지는 정치적 불안의 원인이 되었다. 고구려는 대외적인 확장보다는 내부적인 권력 투쟁과 통치권 강화에 주력하던 시기였다.

백제에서는 제4대 개루왕이 재위 중이었다. 개루왕은 선대 왕들의 뒤를 이어 백제의 국가 기틀을 다지는 데 힘썼다. 당시 백제는 북방의 말갈과 소규모 충돌이 있었으나 대규모 전쟁은 드물었으며, 농업 생산력을 높이고 민생을 안정시키는 정책을 지속했다. 신라에서는 제8대 아달라 이사금이 재위 5년을 맞이했다. 아달라 이사금은 지방 관리를 파견하고 성주를 임명하는 등 중앙 집권적인 통치 체제를 정비하며 영토 보존과 내정 안정에 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