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0년은 16세기 전반기 세계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해이다. 오스만 제국에서는 '장엄왕'으로 불리는 쉴레이만 1세가 즉위하였다. 그는 부친 셀림 1세의 뒤를 이어 제국의 영토를 확장하고 법제를 정비하여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쉴레이만 1세의 등장은 유럽 기독교 국가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으며, 이후 수십 년간 지중해와 동유럽의 정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유럽 내부에서는 권력 투쟁과 외교적 탐색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신성 로마 제국의 카를 5세가 아헨에서 정식으로 국왕으로서 대관식을 치르며 유럽의 강력한 군주로 부상하였다. 한편, 영국의 헨리 8세와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는 프랑스 칼레 근처에서 '황금 천의 들판(Field of the Cloth of Gold)'이라 불리는 화려한 회담을 가졌으나, 양국 간의 실질적인 동맹 구축에는 실패하였다.
대항해 시대의 측면에서 1520년은 지리적 발견의 금자탑을 세운 해이다. 포르투갈 출신의 탐험가 페르난두 마젤란이 이끄는 스페인 함대는 남미 대륙 남단에서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통로인 마젤란 해협을 발견하였다. 11월에 이 해협을 통과한 마젤란은 비로소 광대한 태평양에 진입하였으며, 이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세계 일주 항해를 가능케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아즈텍 제국과 스페인 정복자들 사이의 갈등이 정점에 달하였다. 에르난 코르테스가 이끄는 스페인군은 테노치티틀란에서 아즈텍인들의 거센 반격에 부딪혀 큰 피해를 입고 퇴각하였는데, 이를 '슬픈 밤(Noche Triste)'이라고 부른다. 이 과정에서 아즈텍의 통치자 몬테수마 2세가 사망하였으며, 이는 중앙아메리카의 고대 문명이 몰락하고 스페인의 식민 지배가 본격화되는 서막이 되었다.
종교와 북유럽 정세에서도 중대한 사건들이 발생하였다. 교황 레오 10세는 교서 '엑수르게 도미네(Exsurge Domine)'를 발표하여 마르틴 루터의 주장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철회를 요구하였으며, 이는 종교개혁의 불길을 더욱 당기는 결과로 이어졌다. 북유럽에서는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2세가 스웨덴을 침공하여 스톡홀름을 점령한 뒤 귀족과 시민들을 대량 학살한 '스톡홀름 혈투'가 일어나 스웨덴의 독립 열기를 고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