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2년은 15세기의 82번째 해이며, 율리우스력 기준으로 화요일에 시작된 평년이다. 이 시기는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단계로, 동아시아와 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중요한 정치적 변동과 탐험의 성과가 나타났다. 특히 조선 왕조와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이후 역사의 흐름을 결정짓는 결정적인 사건들이 발생한 시기이기도 하다.
조선에서는 성종 13년에 해당하는 해로, 한국사에서 매우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인 폐비 윤씨 사사 사건이 일어났다. 성종의 왕비였던 윤씨는 질투와 투기 등의 이유로 폐위되어 사가에 머물던 중, 1482년 음력 8월 16일 조정에서 내려진 사약을 받고 사망했다. 이 사건은 당시 왕실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한 조치로 단행되었으나, 훗날 그녀의 아들인 연산군이 즉위한 뒤 어머니의 죽음을 알게 되면서 갑자사화라는 대규모 숙청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유럽에서는 대항해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중요한 지리적 발견이 있었다. 포르투갈의 탐험가 디오구 캉(Diogo Cão)은 국왕 주앙 2세의 명을 받아 아프리카 서해안을 탐험하던 중 콩고강 하구를 발견했다. 그는 이곳에 포르투갈의 영유권을 상징하는 석비(Padrão)를 세웠으며, 이는 유럽인이 중부 아프리카 지역과 본격적으로 접촉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탐험은 향후 바르톨로메우 디아스의 희망봉 발견과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 항로 개척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이베리아반도에서는 카스티야와 아라곤 왕국이 연합하여 이슬람 세력의 마지막 보루인 그라나다를 정복하기 위한 본격적인 전쟁에 돌입해 있었다. 한편, 동유럽에서는 모스크바 대공국의 이반 3세가 타타르의 멍에에서 벗어나 러시아의 중앙집권적 국가 기틀을 다지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또한, 프랑스와 신성 로마 제국 사이에서는 부르고뉴 영토를 두고 벌어진 분쟁을 종결짓기 위한 아라스 조약이 체결되어 유럽의 영토 지형에 변화가 생겼다.
예술과 문화사 측면에서도 1482년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고향인 피렌체를 떠나 밀라노의 루도비코 스포르차 공작의 휘하로 들어갔다. 그는 밀라노에서 군사 공학자이자 예술가로서 활동하며 수많은 발명품을 구상하고 예술적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는 르네상스 예술의 중심지가 피렌체에서 밀라노와 로마 등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산되는 과정의 일면을 보여주는 역사적 이동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