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0

1480년은 15세기 후반에 해당하는 해로, 율리우스력으로 토요일에 시작하는 윤년이다. 이 시기 세계사는 중세에서 근세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르네상스 문화가 성숙기에 접어들었고, 동유럽과 서아시아에서는 오스만 제국의 팽창과 러시아의 독립 등 지정학적 판도가 급변하는 사건들이 발생했다. 동아시아에서는 명나라와 조선이 통치 체제를 정비하며 주변 이민족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시기였다.

한반도의 역사에서 1480년은 조선 성종 11년에 해당한다. 이해 조선 조정의 가장 큰 당면 과제는 북방 여진족, 특히 건주여진의 토벌이었다. 여진족이 국경을 침범하여 약탈을 일삼자, 성종은 허종을 도원수로 임명하여 대규모 군사 작전을 단행했다. 조선군은 압록강을 건너 여진족의 본거지를 공격하여 가옥을 불태우고 포로를 참수하는 등 강경한 대응을 보였다. 이는 조선 전기 북방 영토 안정화를 위한 적극적인 군사 개입의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되어 있다.

러시아 역사에서 1480년은 몽골-타타르의 지배가 공식적으로 종식된 기념비적인 해다. 모스크바 대공국의 이반 3세는 킵차크 칸국의 아흐메트 칸과 '우그라 강 대치'를 벌였다. 모스크바가 몽골에 대한 공납을 거부하자 킵차크 칸국이 침공해왔으나, 우그라 강을 사이에 둔 대치 끝에 몽골군이 회군함으로써 전투는 종료되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러시아는 약 240년간 지속된 '타타르의 멍에'에서 벗어나 완전한 주권 국가로서 성장할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지중해 지역에서는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2세가 유럽을 향한 공세를 강화했다. 오스만군은 로도스 기사단이 지키고 있던 로도스섬을 포위 공격했으나 기사단의 끈질긴 저항에 막혀 함락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탈리아 반도 남부의 오트란토를 기습적으로 침공하여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오트란토 함락은 로마 교황청과 유럽 기독교 세계에 거대한 공포를 안겨주었으며, 서유럽 본토에 대한 이슬람 세력의 직접적인 위협이 현실화된 사건이었다.

문화 및 인물사적으로도 중요한 해이다. 훗날 인류 최초의 세계 일주 항해를 지휘하게 되는 포르투갈의 탐험가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1480년경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독일의 기사이자 회고록으로 유명한 괴츠 폰 베를리힝겐도 이해에 출생했다. 스페인에서는 가톨릭 군주들이 설립한 종교 재판소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여 유대인 개종자들에 대한 심문을 강화하는 등 종교적 불관용이 제도화되는 흐름이 나타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