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9년은 15세기의 후반기에 속하는 평년으로, 서구에서는 근대 국가의 기틀이 마련되던 시기였으며 동아시아에서는 명나라와 조선의 통치 체제가 공고히 다져지던 시기였다. 유럽에서는 이베리아 반도의 통합이 진전되었고, 동유럽과 지중해에서는 오스만 제국의 영향력이 더욱 확대되는 등 세계사적으로 중대한 변화의 흐름이 나타났다.
조선 왕조에서는 성종 10년에 해당하는 해였다. 이 해의 가장 중대한 정치적 사건 중 하나는 폐비 윤씨 사건이다. 성종의 비였던 윤씨는 투기심과 품행 문제로 왕실 내부의 갈등을 빚어왔으며, 결국 1479년 6월에 왕비의 자리에서 물러나 서인으로 강등되었다. 이 사건은 훗날 연산군 대에 이르러 갑자사화라는 비극적인 정치적 파란을 불러일으키는 근원적인 원인이 되었다. 또한 성종은 이 시기 홍문관의 기능을 강화하고 유교적 문치주의를 확립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며 내치를 다졌다.
유럽 대륙에서는 스페인의 역사적 전환점이 마련되었다.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와 결혼했던 페르난도 2세가 아버지 후안 2세의 뒤를 이어 아라곤의 국왕으로 즉위한 해이다. 이로써 이베리아 반도의 두 강대국인 카스티야와 아라곤이 실질적으로 하나의 왕국처럼 결합되는 동군연합 형태가 완성되었으며, 이는 현대 스페인 국가의 직접적인 기원이 되었다. 이 연합 세력은 향후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는 레콘키스타를 완수하고 대항해 시대를 여는 주역이 된다.
동지중해와 발칸 반도에서는 오스만 제국과 베네치아 공화국 사이의 오랜 전쟁이 종결되었다. 1463년부터 지속된 제1차 오스만-베네치아 전쟁은 1479년 1월에 체결된 콘스탄티노폴리스 조약을 통해 마무리되었다. 이 조약으로 베네치아는 에비아섬과 알바니아의 영토 일부를 오스만 제국에 양도하고 매년 막대한 공납금을 지불하기로 합의하였다. 이는 지중해의 해상 패권이 점차 오스만 제국으로 넘어가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으며, 베네치아의 동방 무역 독점 체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음을 의미했다.
문화 및 교육 분야에서는 북유럽의 학문적 발전이 두드러졌다. 덴마크의 국왕 크리스티안 1세의 인가 아래 코펜하겐 대학교가 창설되었다. 이는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웁살라 대학교에 이어 두 번째로 설립된 대학교로, 북유럽의 인문주의 확산과 학술적 성장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처럼 1479년은 세계 각지에서 정치적 통합과 영토 확장, 그리고 학문적 토대 마련이 동시에 진행되던 역동적인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