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0

1450년은 15세기 중반의 해로, 전 세계적으로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중요한 전환점들이 나타난 시기이다. 한국의 조선 왕조에서는 성군으로 추앙받는 제4대 국왕 세종대왕이 승하하고, 그의 장남인 문종이 제5대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세종은 훈민정음 창제를 비롯하여 과학, 문화, 국방 등 다방면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겼으나, 오랜 질병 끝에 이해 음력 2월에 세상을 떠났다. 뒤를 이은 문종은 세자 시절부터 부왕을 도와 정무를 익혔으며, 즉위 후 학문 연구와 병법 정비에 힘쓰며 조선의 기틀을 다져나갔다.

유럽에서는 정보 전달의 혁명을 가져온 금속활자 인쇄술이 본격적으로 태동하고 있었다. 독일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는 이 시기 전후로 가동 활자를 이용한 인쇄기를 완성하였으며, 이는 지식의 보급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성경을 비롯한 서적들의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하여, 훗날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전 유럽으로 확산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이는 지식의 독점을 깨고 근대 시민 사회로 나아가는 기술적 토대가 되었다.

서유럽에서는 장기적인 분쟁이었던 백년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1450년 4월, 프랑스군은 포르미니 전투에서 영국군을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며 노르망디 지역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이 승리는 영국군을 프랑스 본토에서 사실상 몰아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프랑스 왕국의 중앙집권화와 영토 통합에 크게 기여하였다. 같은 시기 이탈리아에서는 프란체스코 스포르차가 밀라노 공작으로 취임하며 스포르차 가문의 통치 시대를 열었고, 이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적 번영으로 이어졌다.

동부 지중해 연안에서는 오스만 제국이 세력을 확장하며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비잔티움 제국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는 무너져가는 제국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제국의 영토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주변으로 극히 축소된 상태였다. 오스만 제국의 무라트 2세가 이 시기 통치 말기에 있었으며, 곧이어 즉위할 메흐메트 2세에 의해 3년 뒤인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되는 역사적 격변을 앞두고 있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잉카 제국이 파차쿠티의 영도 아래 전성기를 맞이하며 급격히 팽창하고 있었다. 잉카는 안데스 산맥을 중심으로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하고 정교한 도로망과 통신 체계를 정비하여 거대 제국의 기틀을 확립하였다. 이처럼 1450년은 아시아의 왕조 교체, 유럽의 기술 혁신과 전쟁의 종결, 그리고 아메리카의 제국 형성 등이 교차하며 세계사의 새로운 흐름을 예고하는 중요한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