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3년은 5세기의 중반에 해당하는 해로, 율리우스력으로 목요일에 시작하는 평년이다. 동양과 서양 역사 모두에서 중요한 정치적 변동이 발생한 시기로 기록되어 있다. 유럽에서는 훈족의 제국이 붕괴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마련되었고, 중국에서는 남조 송나라의 황위 계승을 둘러싼 유혈 사태가 발생하여 왕조의 불안정성이 극대화된 해였다.
서양사에서 453년은 '신의 채찍'이라 불리며 로마 제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훈족의 왕 아틸라(Attila)가 사망한 해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아틸라는 일디코라는 여성과의 결혼식 밤에 급작스럽게 사망했는데, 사인에 대해서는 동맥 파열이나 과도한 음주로 인한 질식 등 여러 설이 존재한다. 그의 죽음은 강력한 카리스마로 유지되던 훈 제국의 분열을 초래했다. 아틸라 사후 그의 아들들 사이에서 권력 다툼이 일어났고, 이는 훈족의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어 유럽 역사에서 퇴장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동양의 중국 남북조 시대, 특히 남조의 송(宋)나라에서는 453년 초에 끔찍한 패륜 사건이 발생했다. 송나라의 3대 황제인 문제(文帝) 유의륭이 태자였던 유소(劉劭)에 의해 시해당한 것이다. 문제는 30년 가까이 재위하며 '원가의 치'라 불리는 태평성대를 이끌었으나, 무속에 빠진 태자를 폐하려다 오히려 선수를 뺏겨 목숨을 잃었다. 아버지를 죽이고 제위에 오른 유소는 불과 3개월 만에 동생인 유준(효무제)에게 패배하여 처형당했다. 이 사건은 남조 황실 내부의 도덕적 타락과 권력 투쟁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한반도의 453년은 삼국시대의 긴장이 지속되던 시기였다. 고구려는 장수왕의 통치 하에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으며, 평양 천도 이후 남진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었다. 이에 맞서 백제의 비유왕과 신라의 눌지 마립간은 433년부터 체결된 나제동맹을 바탕으로 고구려의 압박에 공동으로 대항하는 형세를 유지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453년 신라에서는 봄에 가뭄이 들어 죄수들을 사면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며, 고구려는 중국 북조인 북위와의 외교 관계를 지속하며 국제적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종교 및 문화사적으로 볼 때 453년은 동서양 모두에서 혼란 속의 과도기였다. 기독교 세계에서는 451년 칼케돈 공의회 이후 교리 논쟁이 지속되고 있었고, 아틸라의 죽음 이후 서로마 제국의 정치적 영향력은 더욱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불교가 국가 통치 이념 및 문화로 깊숙이 자리 잡아가던 시기였으나, 중국의 정변과 전쟁으로 인해 승려들과 지식인들의 이동과 사상적 교류가 정치적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하던 때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