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5년은 서기 15세기 중반의 해로, 육십갑자로는 을축(乙丑)년이다. 동양에서는 조선 왕조 세종의 치세가 정점에 달해 유교적 문물 제도가 완성되어 가던 시기였으며, 서양에서는 중세의 종말과 함께 르네상스의 기운이 무르익고 대항해 시대를 앞둔 격변의 시기였다. 이 해는 인류 역사에서 문화, 과학, 정치적 전환점이 되는 여러 사건이 교차한 시점으로 평가받는다.
조선에서는 1445년(세종 27년)에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가 편찬되었다. 이는 훈민정음으로 기록된 최초의 문학 작품이자 악장으로,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노래하고 후대 왕들에게 권계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정인지, 안지, 권제 등이 집필에 참여하였으며, 125장에 달하는 서사시는 새로 창제된 문자의 실용성을 증명하는 동시에 국가의 기틀을 사상적으로 공고히 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국방과 과학 분야에서도 유의미한 진전이 있었다. 세종은 화포의 규격을 표준화하고 화약 병기의 성능을 비약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군기감에 명령하여 화약 무기 제작 기술을 정비하도록 하였다. 이 과정에서 '총통완구' 등의 화기가 개량되었으며, 이는 조선의 국방력을 동아시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방대한 분량의 의학 백과사전인 《의방유취(醫方類聚)》의 편찬이 이 해에 완료되어 독자적인 의학 체계를 정립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유럽에서는 백년전쟁의 여파 속에서 프랑스와 영국 간의 '투르 휴전'이 유지되던 시기였다. 프랑스의 샤를 7세는 이 시기를 활용하여 군사 제도를 개혁하고 상비군을 창설함으로써 중앙집권적 군주제의 기반을 닦았다. 반면 발칸반도 지역에서는 1444년 바르나 전투에서 십자군을 격파한 오스만 제국이 유럽으로의 영향력을 급격히 확대하고 있었으며, 이는 동로마 제국의 멸망을 가속화하는 정치적 배경이 되었다.
문화와 기술적 측면에서 서양은 독일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가동 활자를 이용한 인쇄 기술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에 있었다. 비록 구텐베르크 성경이 출판되기까지는 수년이 더 걸렸으나, 1445년 무렵에는 이미 금속 활자 인쇄를 위한 기술적 실험이 상당 부분 진행되어 지식 전파의 혁명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르네상스 예술의 거장들이 인본주의적 가치를 담은 작품들을 쏟아내며 근대 유럽의 정신적 기틀을 마련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