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1년

1431년은 조선 왕조 세종 13년에 해당하는 해로, 유교적 통치 질서와 국가 기틀이 공고해지던 시기였다. 이해 정월에는 조선 태조와 정종에 이어 태종의 역사를 기록한 《태종실록》 36권이 완성되어 춘추관에 봉안되었다. 이는 조선 초기 왕실의 기록 문화를 체계화하고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학술적 성과였다. 또한 집현전을 중심으로 학문 연구가 심화되었으며, 국가의 예법을 정비하기 위한 각종 의례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과학 기술과 국방 분야에서도 유의미한 발전이 있었다. 세종의 명에 따라 천문 관측 기구인 간의대의 설계와 제작이 구체화되는 등 천문학 연구가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되었다. 북방 지역에서는 여진족의 동태를 살피며 국경 수비를 강화하였고, 이는 향후 사군과 육진을 개척하여 영토를 확정 짓는 군사적 토대가 되었다. 농업 방면에서는 기후와 토질에 맞는 농법을 보급하여 민생 안정을 도모하려는 노력이 지속되었다.

서구 유럽에서는 백년전쟁의 역사적 전환점이 발생하였다. 프랑스의 구국 영웅으로 추앙받던 잔 다르크가 영국군에 포로로 잡힌 뒤, 이단 심판을 거쳐 5월 30일 루앙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잔 다르크의 죽음은 프랑스인들의 민족 의식을 고취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장기적으로 프랑스가 전쟁에서 승기를 잡는 정신적 동력이 되었다. 한편, 12월에는 영국의 헨리 6세가 파리에서 프랑스 국왕으로서 대관식을 거행하며 양국 간의 주권 다툼이 최고조에 달했다.

종교 및 정치적 측면에서는 바젤 공의회가 소집되어 가톨릭교회의 개혁과 공의회의 권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는 교황의 권위와 공의회의 권위가 충돌하는 양상을 보이며 중세 기독교 세계의 질서 변화를 예고했다. 또한 포르투갈의 항해사들이 대서양의 아소레스 제도를 발견하며 본격적인 대항해 시대를 열기 위한 탐험의 보폭을 넓히고 있었다.

남아시아에서는 거대한 문명을 일구었던 크메르 제국의 앙코르 왕조가 사실상 종말을 맞이했다. 태국의 아유타야 왕국이 앙코르를 침공하여 점령함에 따라 크메르인들은 수도를 포기하고 남쪽으로 이주해야 했다. 이 사건은 인도차이나반도의 세력 판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으며, 화려했던 앙코르 문명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캄보디아의 암흑기가 시작되는 기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