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3년은 14세기 후반의 시기로, 동아시아에서는 명나라의 기틀이 잡히고 고려 왕조가 쇠퇴하며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서구권에서는 중세 후기의 혼란과 변화가 지속되었으며, 포르투갈과 같은 국가에서는 왕위 계승을 둘러싼 중대한 정치적 변동이 일어났다. 이 해는 각 지역에서 기존의 질서가 재편되고 새로운 세력이 부상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던 시기로 평가받는다.
고려 우왕 9년에 해당하는 이 해에 한반도에서는 왜구의 침입에 맞선 중대한 군사적 승리가 있었다. 정지가 이끄는 고려 해군이 남해 관음포에서 화포를 사용하여 왜구를 대파한 관음포 전투가 발생했다. 이는 진포 해전 이후 화포가 해전에서 본격적으로 위력을 발휘한 사례로 기록된다. 또한, 북방에서는 이성계가 길주 일대에 침입한 여진족의 수령 납출(納出)의 군대를 격파하며 군사적 명성을 더욱 공고히 했다. 이러한 승리들은 당시 극심했던 내우외환 속에서 신흥 무인 세력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유럽에서는 포르투갈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1383-1385년 위기'가 시작되었다. 포르투갈의 국왕 페르난두 1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자, 그의 딸 베아트리스와 결혼한 카스티야의 국왕 후안 1세가 포르투갈의 왕위를 주장하며 개입했다. 이에 반발한 포르투갈 민중과 일부 귀족들은 아비스 기사단장 주앙을 중심으로 저항을 시작했다. 이 사건은 포르투갈의 독립 유지와 아비스 왕조의 개창으로 이어지는 장기적인 내전의 서막이 되었다.
발칸반도와 동로마 제국 인근에서는 오스만 제국이 세력을 확장하며 비잔티움 제국을 압박하고 있었다. 이해에 비잔티움 제국의 전 황제이자 신학자였던 요안니스 6세 칸타쿠제노스가 수도원에서 사망했다. 그는 퇴위 후 수도사로서 방대한 역사적 기록과 신학 논설을 남겼으며, 그의 죽음은 쇠락해가는 비잔티움 제국의 지적, 정치적 한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상징했다. 한편, 잉글랜드에서는 리처드 2세의 통치 하에 '데스펜서의 십자군'이라 불리는 군사 행동이 플랑드르 지역에서 전개되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종결되었다.
명나라에서는 홍무제의 주도하에 중앙 집권적 통치 체제가 더욱 강화되었다. 홍무제는 과거 제도를 정비하고 대외적으로는 원나라의 잔존 세력인 북원을 압박하며 중국 대륙의 지배권을 확고히 했다. 이 시기 명나라와 고려의 관계에서는 철령위 설치 문제 등을 둘러싼 외교적 마찰의 전조가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이는 향후 동아시아 국제 정세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1383년은 이처럼 각국이 내부적인 체제 정비와 외부적인 영토 방어에 주력하며 근세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양상을 보인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