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1년

1381년은 서기 14세기의 후반기에 해당하며, 고려 우왕 7년, 명나라 홍무 14년에 해당하는 해다. 이 시기는 동서양 모두에서 기존의 사회 질서가 흔들리고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이 모색되던 격동의 시기였다. 유럽에서는 봉건제의 모순으로 인한 대규모 민중 봉기가 발생하였으며, 동아시아에서는 원명 교체기의 혼란 속에서 새로운 국가 기틀을 다지거나 외세의 침략에 대응하는 과정이 전개되었다.

유럽사에서 1381년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영국에서 발생한 '와트 타일러의 난'이다. 흑사병 이후 노동력 부족으로 인해 농민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 정부가 백년전쟁 비용 마련을 위해 무리하게 부과한 인두세가 봉기의 도화선이 되었다. 와트 타일러와 사제 존 볼이 이끄는 봉기군은 런던을 점령하고 국왕 리처드 2세에게 농노제 폐지와 부당한 세금 철폐를 요구했다. 비록 지도부가 처형되며 봉기는 진압되었으나, 이는 중세 봉건제의 붕괴를 앞당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고려에서는 왜구의 침입이 지속되면서 국가적인 방어 체계 정비가 시급했던 해였다. 전해인 1380년 진포 해전과 황산 대첩에서 거둔 승리에도 불구하고, 1381년에도 왜구는 한반도 남부 해안과 내륙을 끊임없이 약탈했다. 이러한 끊임없는 외침은 고려의 국력을 소모시키는 동시에, 이성계와 최영 같은 신흥 무인 세력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내부적으로는 권문세족의 부패와 토지 겸병 문제가 심화되어 신진사대부들과의 갈등이 고조되던 시기였다.

중국 대륙의 명나라는 태조 홍무제의 통치 아래 제국의 판도를 확정 짓는 데 주력했다. 1381년 명나라는 원나라의 잔존 세력이 점거하고 있던 운남 지역을 정벌하기 위해 부우덕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30만 대군을 파견했다. 이 원정은 이듬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명나라가 중국 본토에 대한 통제권을 완전히 장악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 과정에서 훗날 명나라의 대항해 시대를 열었던 정화가 어린 나이에 포로로 잡혀 명나라 궁정으로 압송되기도 했다.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에서는 티무르가 정복 활동을 본격화하며 영토를 확장하고 있었다. 1381년 티무르는 오늘날 아프가니스탄 지역의 헤라트를 점령하고 쿠르트 왕조를 멸망시켰다. 이는 티무르 제국이 페르시아와 서방으로 진출하는 중요한 교두보가 되었으며, 이후 서아시아 전역을 공포로 몰아넣은 대대적인 정복 전쟁의 서막이었다. 이처럼 1381년은 세계 각지에서 기존 세력의 쇠퇴와 신흥 세력의 부상이 교차하며 근세로 나아가는 변화의 흐름이 뚜렷했던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