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6년은 서력으로 14세기의 46번째 해이다. 한국사에서는 고려 충목왕 2년, 중국사에서는 원나라 혜종 지정(至正) 6년에 해당한다. 일본에서는 남북조 시대로, 남조의 쇼헤이(正平) 원년이자 북조의 조와(貞和) 2년이다. 이 해는 유라시아 대륙의 동서 양쪽에서 전쟁사와 질병사에 있어 중대한 전환점이 되는 사건들이 발생한 시기로 기록된다.
유럽에서는 잉글랜드와 프랑스 간의 백년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전쟁의 판도를 바꾼 결정적인 전투인 크레시 전투(Battle of Crécy)가 8월 26일에 발발했다. 에드워드 3세가 이끄는 잉글랜드군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잘 훈련된 장궁병을 전술적으로 활용하여 프랑스의 필리프 6세가 지휘하는 중세 기사단과 제노바 석궁병 부대를 궤멸시켰다. 이 전투는 중세 기병 중심의 전술이 보병과 원거리 무기 중심으로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승기를 잡은 잉글랜드군은 이후 주요 항구 도시인 칼레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흑해 연안에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인 흑사병(페스트)의 유럽 유입을 촉발한 사건이 일어났다. 몽골 제국의 계승 국가 중 하나인 킵차크 한국의 자니벡 칸은 크림 반도의 무역 거점인 카파(Caffa, 현재의 페오도시아)를 포위 공격하던 중, 전염병으로 사망한 시신을 투석기에 담아 성벽 안으로 쏘아 보내는 생물학적 공격을 감행했다. 당시 카파에 고립되어 있던 제노바 상인들이 이듬해 이탈리아로 탈출하면서 흑사병균을 옮겼고, 이는 1347년부터 시작된 유럽 대역병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동아시아의 고려에서는 어린 나이에 즉위한 충목왕이 재위하고 있었으며, 원나라의 정치적 간섭이 지속되던 시기였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과 폐단을 개혁하려는 움직임이 태동하고 있었으며, 이는 이듬해 설치되는 정치도감(整治都監)의 활동으로 이어지는 전초 단계였다. 또한 당시 고려 금강산 장안사에는 원나라 황실의 안녕을 비는 이연선 등의 발원문에 의해 대장경이 봉안되었는데, 이는 14세기 고려와 원나라의 불교 교류 및 복식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남아 있다.
중국의 원나라에서는 제국 말기의 혼란 속에서도 학술적인 성과가 도출되었다. 1343년부터 시작된 송(宋), 요(遼), 금(金) 3국의 정사(正史) 편찬 작업이 1345년과 1346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완성되었다. 승상 토구토(탈탈)가 총재관을 맡아 진행한 이 편찬 사업은 정복 왕조인 원나라가 이전 왕조들의 역사를 정리함으로써 중화 제국으로서의 정통성을 확립하려는 시도였으며, 이렇게 완성된 《송사》, 《요사》, 《금사》는 오늘날까지 해당 시기를 연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료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