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5년

1325년은 아즈텍 문명의 기틀이 마련된 역사적인 해이다. 전설에 따르면 아즈텍인들은 뱀을 물고 선인장 위에 앉아 있는 독수리를 발견한 테스코코 호수의 섬에 도시 테노치티틀란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 도시는 훗날 멕시코시티의 전신이 되었으며, 늪지대를 개간하고 인공 섬인 치남파를 조성하며 중앙아메리카에서 가장 거대한 제국의 중심지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 해는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행가 중 한 명인 이븐 바투타가 장대한 여정을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모로코 탕헤르 출신의 21세 법학자였던 이븐 바투타는 메카 성지 순례를 목적으로 고향을 떠났으나, 이후 약 30년 동안 아프리카, 중동, 인도,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및 중국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탐험했다. 그의 여행 기록인 '리흘라'는 14세기 이슬람 세계와 주변 문명의 사회상 및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대체 불가능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동아시아에서는 원나라의 간섭을 받던 고려 왕조가 유지되고 있었다. 당시 고려의 국왕은 충숙왕이었으며, 그는 원나라와의 복잡한 정치적 관계 속에서 왕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원나라 내부에서는 태정제 예순 테무르 카안이 통치하며 제국의 안정을 꾀했으나, 황위 계승을 둘러싼 잠재적인 갈등과 권력 투쟁이 수면 아래에서 지속되고 있었다. 고려 사회 내부에서는 권문세족의 토지 독점과 횡포가 심화되며 사회적 모순이 점차 가중되던 시기였다.

남아시아와 인도 지역에서도 중요한 변화가 나타났다. 인도 북부에서는 델리 술탄국의 기야스 웃 딘 투글루크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인 무함마드 빈 투글루크가 왕위에 올라 통치를 시작했다. 그는 파격적인 경제 정책과 수도 이전 등을 시도했으나 급진적인 개혁으로 인해 많은 저항에 부딪히기도 했다. 한편 아나톨리아 반도에서는 오스만 제국이 비잔티움 제국의 영토를 잠식하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으며, 오스만 1세의 치세 아래 강력한 군사적 기반을 다지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프랑스와 영국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며 훗날 백년전쟁으로 이어지는 갈등의 불씨가 자라나고 있었다. 프랑스의 샤를 4세와 영국의 에드워드 2세 사이의 가스코뉴 영토 분쟁은 양국 관계를 악화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또한 이 시기 이슬람 세계와 유럽을 잇는 지중해 무역망은 여전히 활발하게 작동하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상업적 부의 축적과 문화적 교류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