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3년은 14세기 전반의 평년으로, 율리우스력으로는 토요일에 시작되는 해이다. 이 시기는 유라시아 대륙 전반에서 정치적 변동과 체제 개편이 활발하게 일어났던 중세 후기의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몽골 제국의 후예인 원나라의 권력 구도가 재편되었고, 유럽에서는 교황권과 세속 권력의 대립이 격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동아시아의 원나라에서는 1323년 9월, '남파의 변'이라 불리는 대규모 정변이 발생했다. 원나라의 제5대 황제인 영종(시데발라)이 상도에서 대도로 이동하던 중 남파에서 어사대부 테케시 등에 의해 암살당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영종의 친정 체제와 급진적인 한화 정책은 중단되었으며, 진왕 예순 테무르가 태정제로 즉위하며 보수파 세력이 다시 득세하게 되었다. 고려에서는 충숙왕이 재위 중이었으나, 원나라의 정세 변화와 맞물려 심왕파의 견제와 고려를 원의 행성으로 편입시키려는 입성론(立省論)의 대두로 인해 왕권 행사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유럽에서는 신성 로마 제국의 루드비히 4세와 교황 요한 22세 사이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교황은 루드비히 4세가 교황의 승인 없이 황제의 칭호를 사용하는 것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그에게 파문을 예고하며 복종을 요구했다. 이는 중세적 교황 지상주의와 신흥 세속 국가의 왕권이 정면으로 충돌한 사례로, 훗날 종교 개혁과 근대 국가 형성의 사상적 단초를 제공했다. 또한 리투아니아 대공국에서는 게디미나스 대공이 빌뉴스를 수도로 정하고 서구 유럽에 서신을 보내 기독교 수용 의사를 밝히는 등 국가의 대외적인 기틀을 마련했다.
동로마 제국에서는 안드로니코스 2세와 그의 손자인 안드로니코스 3세 사이의 내전이 지속되면서 제국의 국력이 급격히 쇠퇴하고 있었다. 이러한 내부 분열을 틈타 소아시아에서 세력을 키우던 오스만 투르크는 비잔티움 제국의 영토를 점진적으로 잠식해 들어갔다. 이는 훗날 오스만 제국이 지중해 동부의 패권자로 성장하는 발판이 되었다. 한편, 서아프리카의 말리 제국은 만사 무사의 통치하에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으며, 그는 이 무렵 메카 순례를 준비하며 제국의 막강한 경제력을 전 세계에 알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자바섬을 중심으로 한 마자파힛 제국이 세력을 확장하며 해상 무역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이 시기 마자파힛은 주변 섬들을 정복하며 인도네시아 제도의 통합을 꾀했으며, 이는 지역 내 문화적·경제적 교류가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1323년은 세계 각지에서 기존 질서가 무너지거나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며 14세기 후반의 격동기를 예고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던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