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3년은 서구 중세사에서 교황권의 급격한 몰락과 왕권의 강화를 상징하는 '아나니 사건'이 발생한 해다. 프랑스 왕 필리프 4세는 교회 재산에 대한 과세 문제로 교황 보니파시오 8세와 격렬하게 대립했다. 필리프 4세의 측근 기욤 드 노가레는 이탈리아의 콜로나 가문과 결탁하여 아나니에 체류 중이던 교황을 습격하고 구금했다. 이 사건의 충격으로 보니파시오 8세는 얼마 후 사망했으며, 이후 교황청이 프랑스 아비뇽으로 옮겨가는 '아비뇽 유수'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동아시아에서는 원나라의 간섭기 아래 있던 고려 충렬왕 29년에 해당한다. 당시 고려 조정은 원나라의 요구에 따른 부마국의 지위를 유지하며 복잡한 내외 정세를 겪고 있었다. 특히 충렬왕과 그의 아들 충선왕 사이의 권력 투쟁이 원나라의 개입 속에 전개되었으며, 충선왕은 원나라 수도인 대도에 머물며 학문적 교류를 넓히는 한편 고려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노력했다. 원나라 내에서는 성종(테무르 카안)의 치세 하에 관료 체제가 정비되고 있었으나 점차 황실 내부의 갈등이 싹트기 시작했다.
인도 대륙에서는 델리 술탄국의 알라웃딘 할지가 라자스탄 지방의 강력한 요새인 치토르를 점령했다. 알라웃딘 할지는 영토 확장 정책의 일환으로 치토르가르를 포위 공격했으며, 긴 공성전 끝에 승리하여 세력을 넓혔다. 이 사건은 인도 역사에서 이슬람 세력의 확장을 보여주는 중요한 군사적 이정표가 되었으며, 훗날 파드마바트와 같은 문학적 전승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한편 비잔티움 제국은 오스만 세력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로헤르 데 플로르가 이끄는 카탈루냐 용병단을 고용하여 소아시아 전선에 투입했다.
과학과 문화 측면에서는 원나라의 수학자 주세걸이 그의 저명한 수학서인 '사원옥감(四元玉鑑)'을 출판했다. 이 서적은 다항식과 고차 연립 방정식의 해법을 다루고 있으며, 당시 동양 수학의 정점을 보여주는 학술적 성취로 평가받는다. 자연재해로는 1303년 8월 8일 지중해 크레타섬 인근에서 발생한 대지진이 기록되어 있다. 이 지진은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를 파손시키는 등 동지중해 전역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으며, 같은 해 중국 산서성 홍동 현에서도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여 수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이 보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