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2

1292년율리우스력으로 화요일에 시작하는 윤년이다. 13세기 후반에 해당하는 이 시기는 아시아와 유럽을 아우르는 몽골 제국의 영향력이 정점에 달했던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의 후반부에 해당한다.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서 육로와 해로를 통한 동서양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각 지역의 정치적, 종교적 지형이 크게 요동치는 전환기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동아시아에서는 원나라의 쿠빌라이 칸이 제국을 통치하고 있었으며, 고려는 제25대 국왕인 충렬왕이 다스리던 시기였다. 고려는 원나라의 부마국으로서 정치적 간섭을 받고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몽골 제국의 광대한 네트워크를 통해 세계 질서에 깊이 편입되어 있었다. 이 해에 원나라는 동남아시아의 자바섬(현재의 인도네시아 위치)을 복속시키기 위해 대규모 해군 원정대를 파견했다. 또한 베네치아 출신의 상인 마르코 폴로가 쿠빌라이 칸의 명을 받아 일칸국으로 시집가는 코코친 공주를 호위하기 위해 해로를 통해 중국을 떠난 해이기도 하다.

유럽에서는 정치적, 종교적 권력의 공백과 갈등이 두드러졌다. 1292년 4월, 교황 니콜라오 4세가 선종하면서 교황좌가 공석이 되었다. 이후 추기경들 간의 격렬한 정치적 파벌 싸움으로 인해 차기 교황인 첼레스티노 5세가 선출되기까지 약 2년 3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교황 빈자리(Sede Vacante) 사태가 이어졌다. 브리튼섬에서는 스코틀랜드의 왕위 계승을 둘러싼 심각한 분쟁이 있었는데,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의 중재 및 압력 아래 1292년 11월 존 발리올이 스코틀랜드의 새로운 국왕으로 즉위하며 양국 간 장기적인 정치적 갈등의 씨앗이 뿌려졌다.

중동 지역에서는 이슬람 세력인 맘루크 왕조가 확고한 패권을 쥐고 영토를 안정화하고 있었다. 바로 전년도인 1291년, 맘루크 왕조의 술탄 알아슈라프 할릴이 십자군의 마지막 주요 거점이었던 아크레를 함락시킴으로써 약 200년에 걸친 십자군 전쟁이 사실상 종결되었고, 1292년은 이러한 이슬람 세력의 승리와 레반트 지역의 지배권이 굳어지는 시기였다. 한편 몽골계 국가인 일칸국에서는 가이하투 칸이 통치하며 국가의 만성적인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었으며, 이는 훗날 중국의 교초를 모방한 지폐(초) 발행 등의 경제적 시도로 이어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1292년은 세계사적으로 중대한 군사적 대충돌이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가운데, 각 제국과 왕국들이 내부 통치 체제를 정비하고 새로운 외교적, 상업적 활로를 모색하던 시기로 평가할 수 있다. 몽골 제국을 매개로 한 동서양의 인적, 물적 교류는 마르코 폴로의 귀환 여정에서 보듯 해상 실크로드의 발달을 촉진했다. 동시에 유럽의 복잡한 왕위 계승 문제와 교황권의 공백은 향후 전개될 중세 후기의 민족국가 형성 및 교황권 쇠퇴의 전조를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분기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