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년

292년은 서기 3세기의 말엽에 해당하는 해로, 서력기원으로는 평년이며 육십갑자로는 임자(壬子)년에 해당한다. 이 시기는 동양과 서양의 주요 국가들이 고대 국가로서의 체제를 정비하거나 내부적인 권력 변동을 겪으며 중세로 이행하기 위한 과도기적 특징을 보이던 때였다.

한반도의 고구려에서는 제13대 왕인 서천왕이 재위 23년 만에 서거하였다. 그 뒤를 이어 서천왕의 태자인 상부(相夫)가 왕위에 오르니, 이가 곧 제14대 봉상왕이다. 봉상왕은 즉위 초기부터 자신의 권위와 세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정적들을 숙청하는 등 강력한 왕권 강화를 꾀하였다. 특히 즉위한 해에 숙부이자 안국군(安國君)으로 칭송받던 달가(達賈)를 살해하였는데, 이는 왕실 내부의 권력 투쟁이 치열했음을 보여준다.

신라에서는 제14대 국왕인 유례이사금이 재위하고 있었다.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이해 여름에 가뭄이 심하게 들어 왕이 몸소 기우제를 지내며 민심을 수습하고자 노력하였다. 백제는 제9대 책계왕의 통치 아래 있었으며, 북쪽의 말갈 등 이민족의 침입에 대비하여 아차성과 사성 등을 보수하고 국방력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던 시기였다.

중국 대륙은 서진(西晉) 왕조가 지배하고 있었으나, 제2대 황제인 혜제의 무능함 속에 국정이 혼란스러웠다. 황후인 가남풍과 그 친족들이 실권을 장악하여 전횡을 일삼았으며, 이는 훗날 '팔왕의 난'이라는 대규모 내란으로 이어지는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중앙 정부의 약화는 북방 민족들의 세력 확장을 허용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향후 5호 16국 시대의 단초가 마련되었다.

로마 제국에서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제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사두정치(Tetrarchy) 체제를 확립해 나가던 시기였다. 광대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제국을 동서로 나누고, 다시 각각 정제(Augustus)와 부제(Caesar)를 두어 통치하는 시스템을 준비하였다. 이는 3세기의 위기를 극복하고 로마의 생명력을 연장하기 위한 행정적, 군사적 개혁의 일환이었다.

중앙아메리카의 마야 문명에서는 오늘날 과테말라 지역에 위치한 티칼(Tikal)에서 '비석 29호(Stele 29)'가 건립되었다. 이 유물은 마야 저지대에서 발견된 날짜가 기록된 가장 오래된 기념물 중 하나로 꼽힌다. 이 비석의 존재는 당대 마야인들이 이미 정교한 역법 체계를 갖추고 있었으며, 도시 국가 형태의 고도화된 정치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