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7

서기 1287년은 13세기 후반에 속하는 해로, 율리우스력으로 수요일에 시작하는 평년이다. 이 시기는 유라시아 대륙 전반에 걸쳐 몽골 제국의 영향력이 강력하게 미치던 때였으며, 동아시아와 유럽, 중동 지역에서 다양한 정치적, 군사적 사건과 자연재해가 발생했다. 특히 원나라의 팽창 정책과 유럽의 지형을 바꾼 대홍수 등이 이 해의 주요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동아시아 역사에서 1287년은 원나라 쿠빌라이 칸의 통치 아래 고려와 몽골 제국 내부의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간 시기다. 몽골 제국 동부에서는 칭기즈 칸의 동생 템게 옷치긴의 후손인 나얀이 쿠빌라이 칸의 중앙 집권화 정책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은 만주와 한반도 북부 정세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고려 충렬왕은 원나라의 요청에 따라 반란 진압을 돕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출정하기도 했다. 한편 남쪽에서는 몽골군이 버마의 파간 왕조를 침공하여 수도 파간을 점령함으로써 동남아시아의 정치 지형을 뒤흔들었다.

유럽 지역에서는 역사적으로 중대한 자연재해가 발생하여 지리적 환경이 영구적으로 변화했다. 1287년 12월 14일, 북해 연안을 강타한 '성 루치아 홍수(St. Lucia's flood)'는 네덜란드와 북독일 지역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이 거대한 폭풍 해일로 인해 제방이 무너지고 내륙 깊숙이 바닷물이 들어차면서, 기존의 호수였던 지역이 현재의 쥬이더 쩨(Zuiderzee)라는 거대한 만으로 변모했다. 이 재해로 인해 약 5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며, 네덜란드의 해상 무역 중심지가 이동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동과 유럽을 잇는 외교사적 측면에서도 1287년은 의미 있는 해다. 몽골의 일 칸국 군주 아르군은 이슬람 세력인 맘루크 왕조를 견제하기 위해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과 동맹을 맺고자 했다. 이를 위해 네스토리우스교 수도사인 랍반 바르 사우마가 이끄는 사절단이 유럽으로 파견되었다. 그는 로마를 거쳐 파리와 보르도를 방문해 프랑스의 필리프 4세와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를 접견했다. 비록 즉각적인 군사 동맹은 성사되지 않았으나, 이 여행은 중세 시대 동서양의 교류와 상호 인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문화 및 예술 분야에서도 1287년은 여러 기록을 남겼다. 이탈리아에서는 피렌체 대성당의 건립 계획과 관련된 논의가 진행되던 시기였으며, 귀도 디 피에트로(훗날의 프라 안젤리코)와 같은 초기 르네상스 화가들의 활동 기반이 닦이던 때였다. 또한 영국의 에드워드 1세는 웨일스 정복을 공고히 하기 위해 카나번 성을 비롯한 여러 성곽 건설을 지속했다. 결론적으로 1287년은 몽골 제국을 매개로 한 동서양의 상호작용, 대규모 자연재해로 인한 지리적 변화, 그리고 각 지역 왕조들의 흥망성쇠가 교차하는 역동적인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