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2년

1262년은 13세기 중반에 해당하는 연도로,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서 몽골 제국의 팽창과 그로 인한 정치적, 군사적 격변이 이어지던 시기이다. 특히 이 해는 거대한 단일 제국이었던 몽골 제국 내부에서 본격적인 분열과 내전이 가시화된 중요한 기점으로 평가받는다. 동아시아부터 중동, 동유럽에 이르기까지 각 지역의 국가들은 몽골의 압도적인 영향력 아래에서 체제를 재편하거나 생존을 위한 외교적, 군사적 투쟁을 전개했다.

한반도의 고려는 원종(元宗) 3년에 해당한다. 당시 고려는 수십 년간 이어진 대몽항쟁을 사실상 마무리하고 몽골과 강화를 맺은 직후의 과도기적 상황에 놓여 있었다. 내부적으로는 최씨 무신정권이 붕괴된 후 김준(金俊)을 비롯한 새로운 무신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국왕인 원종은 왕권을 회복하고 몽골과의 관계를 안정화하려 시도했다. 1262년 원종은 최의를 제거하고 왕정 복고에 기여한 인물들을 위사공신(衛社功臣)으로 책록하며 정국의 안정을 도모했으나, 여전히 실권은 무신들에게 집중되어 있어 불안정한 정치 구도가 지속되었다.

중동과 코카서스 지역에서는 몽골 제국의 분열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인 '베르케-훌라구 전쟁(Berke–Hulagu war)'이 본격적으로 발발했다. 이는 킵차크 칸국(금장 칸국)의 칸 베르케와 일 칸국의 창립자인 훌라구 사이에서 벌어진 전면전으로, 몽골 제국 내에서 독립된 칸국들 간에 일어난 최초의 대규모 내전이다. 이슬람교로 개종한 베르케는 훌라구가 바그다드를 함락시키며 이슬람 세계를 파괴한 것에 크게 분노했고, 영토 분쟁까지 겹치면서 두 세력은 1262년 캅카스 지역을 중심으로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이 내전은 몽골 제국이 더 이상 대칸의 명령 아래 단일한 지휘 체계로 움직이지 않음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동유럽과 루스 공국(러시아) 지역에서는 몽골의 지배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1262년 로스토프, 블라디미르, 수즈달, 야로슬라블 등 루스 공국의 주요 도시들에서 몽골의 가혹한 세금 징수에 반발하는 민중 봉기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이에 블라디미르 대공 알렉산드르 네프스키는 몽골의 징벌적 보복을 막기 위해 킵차크 칸국의 수도로 직접 외교적 협상을 떠나야 했다. 한편, 북유럽에서는 아이슬란드가 노르웨이 국왕 하콘 4세와 '오래된 조약(Old Covenant)'을 맺기 시작하며 독립적인 족장 체제였던 아이슬란드 자유국(Icelandic Commonwealth) 시대가 막을 내리고 노르웨이의 지배하에 편입되었다.

중동과 중국 지역의 정세 또한 몽골의 움직임에 따라 요동치고 있었다. 이집트와 시리아를 거점으로 한 맘루크 왕조는 술탄 바이바르스의 통치 아래 몽골의 남하를 저지하며 이슬람 세계의 새로운 맹주로 자리 잡고 있었으며, 베르케-훌라구 전쟁을 틈타 킵차크 칸국과 동맹을 맺고 일 칸국을 견제하는 외교술을 펼쳤다. 동아시아에서는 몽골 제국의 대칸 자리를 차지한 쿠빌라이 칸이 내부 정적들을 정리하는 한편, 중국 대륙의 남송을 정복하기 위한 군사적 압박을 지속하고 있었다. 이처럼 1262년은 몽골 제국이라는 거대한 축을 중심으로 세계 각지의 세력들이 갈등하고 연합하며 새로운 국제 질서를 형성해 나가던 역동적인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