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2년은 13세기 중엽의 연도로,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정치적 격변과 법제적 변화가 동시에 일어난 시기였다. 한반도에서는 고려 왕조가 몽골의 침략에 맞서 장기적인 항전을 이어가고 있었으며, 유럽과 중동에서도 왕권의 교체와 제국의 확장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 해는 중세 사회의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사건들을 포함하고 있다.
고려 왕조의 관점에서 1252년은 고종 39년에 해당한다. 당시 고려는 몽골 제국의 거듭된 침략으로 인해 강화도로 수도를 옮긴 채 저항을 지속하고 있었다. 무신정권의 지도자였던 최항이 권력을 행사하며 몽골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으나, 본토의 백성들은 몽골군의 약탈과 공격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몽골은 고려의 완전한 복속과 국왕의 출륙 환도를 요구하며 압박의 수위를 높였고, 이는 고려 조정 내부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유럽의 정치적 상황을 살펴보면, 이베리아반도의 카스티야와 레온 왕국에서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성왕으로 불리던 페르난도 3세가 서거하고, 그의 아들 알폰소 10세가 왕위에 올랐다. 알폰소 10세는 훗날 '현왕'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학문과 예술, 법률 정비에 큰 업적을 남겼으며, 그의 즉위는 스페인 역사에서 문화적 황금기를 준비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북유럽에서는 스웨덴의 섭정 비르게르 얄에 의해 스톡홀름이 건설되었다는 공식적인 기록이 처음으로 나타나, 오늘날 스웨덴 수도의 기원을 알리는 해로 평가받는다.
종교와 법제사적 측면에서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황 인노첸시오 4세가 발표한 교종 칙서 '아드 엑스티르판다(Ad extirpanda)'가 중대한 사건으로 꼽힌다. 이 칙서는 이단 심문 과정에서 이단 혐의자로부터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고문을 사용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는 서구 법제사에서 종교 재판의 잔혹성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으며, 이후 수세기 동안 종교적 반대자들을 탄압하는 도구로 활용되어 역사에 어두운 기록을 남겼다.
아시아 대륙을 장악하고 있던 몽골 제국에서는 제4대 대칸인 몽케 칸이 통치권을 공고히 하며 제국 전역의 행정 체계를 정비하고 있었다. 몽케 칸은 제국의 영토를 더욱 확장하기 위해 동생인 훌라구에게 서남아시아 정벌을, 쿠빌라이에게는 남송 정벌을 준비하도록 명령했다. 이러한 결정은 훗날 이슬람 세계의 중심지였던 바그다드의 함락과 아바스 왕조의 멸망, 그리고 원 왕조의 성립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세계사적 변화의 서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