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0

1250년은 13세기의 정중앙에 위치한 해로, 율리우스력으로 토요일에 시작하는 평년이다. 세계사적으로 이 시기는 중세의 정치, 종교, 군사적 지형이 급격하게 재편되는 중요한 분기점으로 평가받는다. 유럽에서는 신성 로마 제국의 권위가 실추되기 시작했고, 중동에서는 십자군 전쟁의 실패와 새로운 왕조의 탄생이 있었으며, 동아시아는 몽골 제국의 팽창 속에 혼란과 재편이 거듭되던 시기였다.

유럽 역사에서 1250년은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이자 시칠리아의 왕이었던 프리드리히 2세가 12월 13일에 사망한 해로서 큰 의미를 갖는다. '세계의 경이(Stupor Mundi)'라 불리며 교황권과 대립했던 그의 죽음은 호엔슈타우펜 왕조의 몰락을 예고했다. 이는 독일 지역에서 황제가 없는 대공위 시대(Great Interregnum)가 시작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이로 인해 중앙 집권적 권력이 약화되고 지방 제후들의 세력이 강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탈리아 반도 내에서는 교황파(겔프)와 황제파(기벨린) 간의 갈등 양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중동 지역에서는 이집트를 중심으로 권력 구조의 대변동이 일어났다. 프랑스의 루이 9세가 주도한 제7차 십자군 원정은 이 해에 결정적인 실패를 맛보았다. 4월에 벌어진 파리스쿠르 전투에서 루이 9세는 아이유브 왕조의 군대에게 패배하여 포로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아이유브 왕조의 술탄 투란샤가 암살당하고, 맘루크(노예 병사) 출신들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는 아이유브 왕조의 멸망과 맘루크 왕조의 건국으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사건이었으며, 이후 맘루크 왕조는 1517년 오스만 제국에 정복될 때까지 이집트와 시리아 일대를 지배하는 강력한 이슬람 국가로 성장했다.

동아시아의 고려는 몽골 제국의 침략에 맞서 강화도로 천도한 상태에서 대몽 항쟁을 지속하고 있었다. 당시 고려의 집권자는 최씨 무신 정권의 최항이었으며, 몽골과의 전쟁 장기화로 인해 국토가 황폐해지고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져 있었다. 한편 몽골 제국 내부적으로는 제3대 대칸 귀위크가 사망(1248년)한 이후 후계 구도를 둘러싼 정치적 공백기가 이어지다가, 1251년 몽케 칸이 즉위하기 직전의 과도기적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는 몽골 제국이 서아시아와 동아시아에 대한 정복 전쟁을 재개하기 위한 숨 고르기 단계였다고 볼 수 있다.

문화 및 지성사적 측면에서 1250년경은 유럽 스콜라 철학의 발전과 고딕 양식의 확산이 두드러진 시기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유럽 학계에 본격적으로 수용되면서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꾀하는 시도가 활발해졌다. 또한 건축 기술의 발달로 인해 프랑스와 독일 등지에서는 더욱 웅장하고 정교한 고딕 대성당들이 건설되거나 계획되었다. 노르웨이에서는 1250년경에 한자동맹과의 무역이 활성화되면서 베르겐이 상업적 중심지로 부상하기 시작하는 등, 중세 성기에서 중세 후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특징들이 사회 곳곳에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