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2년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 중 하나는 루스(러시아)의 알렉산드르 네프스키가 이끄는 노브고로드 공국군이 튜턴 기사단을 격파한 '얼음 위의 전투'이다. 4월 5일 페이푸스 호수의 결빙된 수면 위에서 벌어진 이 전투는 로마 가톨릭 세력의 동방 확장을 저지하고 정교회 문화를 수호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중장갑을 갖춘 기사들이 얼음이 깨지며 물에 빠지는 등의 피해를 입으며 패배하자, 튜턴 기사단은 루스 영토에 대한 야욕을 한동안 접어야 했다.
유럽 동부와 중부에서는 몽골 제국의 철군이 이루어졌다. 1241년 말 대칸 오고타이가 서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유럽 원정을 이끌던 바투는 차기 칸 선출을 위한 쿠릴타이에 참석하기 위해 헝가리와 크로아티아 등지에 머물던 군대를 회군시켰다. 이로 인해 서유럽 전체로 번질 뻔했던 몽골의 침공 위협은 일시적으로 해소되었으나, 바투는 돌아가는 길에 사라이를 수도로 삼아 금장한국(킵차크 칸국)을 건설함으로써 러시아와 동유럽 일대를 장기간 지배할 기반을 마련했다.
서유럽에서는 프랑스의 루이 9세와 잉글랜드의 헨리 3세 사이의 영토 분쟁인 생통주 전쟁이 정점에 달했다. 1242년 7월 타유부르 전투에서 루이 9세가 이끄는 프랑스군이 헨리 3세와 반란 귀족들의 연합군을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 승리는 프랑스 내에서 영국 국왕의 영향력을 대폭 축소시켰으며, 프랑스 왕실의 중앙 집권적 권위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패배한 헨리 3세는 프랑스 내 영토 탈환의 꿈을 포기하고 본국으로 후퇴해야 했다.
동아시아의 고려는 몽골의 지속적인 압박 속에서 고군분투하던 시기였다. 당시 고려는 강화도로 수도를 옮겨 항전을 이어가고 있었으며, 1242년에도 몽골군의 소규모 침입과 약탈이 지속되었다. 무신정권의 지도자였던 최우는 팔만대장경 판각 사업을 통해 부처의 힘으로 국난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한편 몽골 본토에서는 오고타이 칸의 부인인 퇴레게네 카툰이 섭정을 시작하며 제국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으며, 이는 제국 내부의 정치적 역학 관계에 변화를 가져왔다.
아나톨리아 반도에서는 몽골군이 룸 셀주크 왕조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몽골의 장군 바이주가 이끄는 군대는 1242년 에르주룸을 함락시키며 셀주크 세력을 위협했다. 이는 이듬해 발생할 쾨세다그 전투의 전초전이었으며, 이슬람 세계의 강력한 축이었던 룸 셀주크 왕조가 붕괴하고 몽골의 영향권 아래 들어가는 시발점이 되었다. 이처럼 1242년은 유라시아 전 대륙에 걸쳐 기존 세력 판도가 재편되고 새로운 지배 질서가 형성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