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9년은 13세기의 29번째 해로, 율리우스력으로 월요일에 시작하는 평년이다. 육십갑자로는 기사년(己巳年)에 해당한다. 이 해는 세계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환점들이 발생한 시기로 기록된다. 유럽과 중동에서는 제6차 십자군 전쟁이 외교적 성과를 거두며 예루살렘을 일시적으로 회복했고, 동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는 몽골 제국의 새로운 대칸이 즉위하며 제국의 팽창이 본격화되는 시점이었다.
유럽 역사에서 1229년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이끄는 제6차 십자군 원정이 정점에 달한 해이다. 교황으로부터 파문당한 상태였던 프리드리히 2세는 무력이 아닌 외교적 수단을 통해 성지를 탈환했다. 그는 2월 18일 아이유브 왕조의 술탄 알 카밀과 자파 조약을 체결하여 예루살렘, 베들레헴, 나자렛 등의 통치권을 10년 동안 기독교 측에 양도받기로 합의했다. 이는 피를 흘리지 않고 성지를 회복한 드문 사례였으나, 교황청과 기독교 세계 내부에서는 파문당한 황제의 성과라는 점 때문에 큰 논란이 일기도 했다.
몽골 제국에서는 칭기즈 칸 사후의 권력 공백기가 끝나고 오고타이 칸(우구데이)이 제2대 대칸으로 공식 즉위했다. 1227년 칭기즈 칸이 사망한 뒤 툴루이가 임시로 국정을 맡았으나, 1229년 쿠릴타이를 통해 오고타이가 대칸으로 선출되었다. 오고타이의 즉위는 몽골 제국이 단순한 유목 연합체를 넘어 체계적인 제국으로 발돋움하고, 고려와 유럽을 포함한 세계 각지로의 정복 전쟁을 재개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이슬람 세계의 북아프리카 지역에서는 하프스 왕조가 성립되었다. 1229년 이프리키야(현재의 튀니지)의 총독이었던 아부 자카리야 야히야 1세가 알모하드 칼리파조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이는 북아프리카의 정치 지형을 바꾸는 사건이었으며, 이후 하프스 왕조는 튀니스를 수도로 삼아 서부 이슬람 세계의 문화와 상업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리게 된다.
동아시아의 고려는 고종 16년이었으며, 무신정권의 집권자 최우가 권력을 공고히 하던 시기였다. 당시 고려는 거란 유민의 침입을 격퇴한 직후였으나, 북방에서는 몽골의 압박이 점차 거세지고 있었다. 1229년은 고려 내부적으로는 가뭄과 기근으로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졌으며, 최우 정권은 이에 대한 대응과 동시에 자신의 사병 집단을 강화하며 권력 기반을 다지는 데 주력했다. 이는 불과 2년 뒤인 1231년부터 시작될 몽골의 대대적인 침략을 앞둔 폭풍전야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