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3년

1213년은 한반도의 고려 역사에서 왕위 교체가 일어난 해이다. 무신정권의 실권자인 최충헌이 강력한 권력을 쥐고 통치하던 가운데, 제22대 국왕인 강종이 재위 1년 8개월 만에 병으로 승하하였다. 그의 뒤를 이어 태자인 고종이 제23대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고종의 즉위 초반 역시 최충헌의 무단 통치 아래 있었으며, 이 시기 고려는 국왕의 실권이 극히 미약했고 훗날 닥쳐올 몽골의 침략을 앞두고 내부에 깊은 정치적 모순을 안고 있던 때였다.

동아시아 대륙에서는 칭기즈 칸이 이끄는 몽골 제국이 금나라를 대대적으로 공격하며 세력을 팽창하고 있었다. 몽골군의 거센 침공 속에 금나라 내부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금나라의 장수 호샤후가 쿠데타를 일으켜 제7대 황제 위소왕을 암살하고, 선종을 새로운 황제로 옹립하였다. 이 시기 몽골군은 금나라의 만리장성 방어선을 돌파하고 화북 지방의 여러 성을 잇달아 함락시켰으며, 금나라의 수도인 중도를 강하게 압박하며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판도를 뒤흔들었다.

유럽에서는 종교적, 정치적 갈등에 따른 굵직한 사건들이 발생했다. 9월 12일 프랑스 남부에서는 알비십자군 전쟁의 핵심 전투 중 하나인 몽뮈레 전투가 벌어졌다. 시몽 드 몽포르가 이끄는 십자군은 아라곤의 국왕 페드로 2세와 툴루즈 백작의 연합군을 상대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대승을 거두었으며, 이 전투에서 페드로 2세가 전사하였다. 또한,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교황칙서인 쿠이아 마이오르를 반포하여 제5차 십자군 원정을 촉구하며 서유럽 내 교황권의 절정을 과시했다.

잉글랜드는 국왕 존 왕의 굴복과 내부 귀족들의 반발이 심화하던 시기였다. 존 왕은 캔터베리 대주교 임명 문제를 둘러싸고 교황 인노첸시오 3세와 오랫동안 대립하다가 파문을 당했으나, 결국 1213년 교황에게 완전히 굴복하여 잉글랜드를 교황의 봉토로 바치고 영지로 되돌려 받는 굴욕적인 조약을 맺었다. 프랑스와의 전쟁 실패와 국왕의 계속된 실정, 그리고 막대한 세금 징수는 잉글랜드 귀족들의 강한 불만을 샀고, 이는 2년 뒤인 1215년 대헌장이 제정되는 결정적인 배경이 되었다.

이웃한 일본의 가마쿠라 막부에서도 권력 투쟁을 동반한 대규모 내부 반란이 일어났다. 막부 내에서 강력한 무사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와다 요시모리가 호조 요시토키의 도발에 반발하여 군사를 일으킨 이른바 와다 합전이 발발했다. 격렬한 전투 끝에 이 반란은 결국 호조 가문에 의해 진압되었고 와다 일족은 멸망하였다. 이를 계기로 호조 가문은 막부 내의 강력한 경쟁 세력을 제거하고 막부의 실권을 쥐는 싯켄 정치를 한층 더 공고히 다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