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1년

1201년은 율리우스력으로 월요일에 시작하는 평년이며, 13세기가 시작되는 첫해이다. 이 시기 세계사적으로는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서 중세의 정치적, 군사적 지형이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새로운 유목 제국의 통일 기운이 싹트고 있었고, 유럽에서는 종교적 열정에 기반한 십자군 원정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가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한국의 고려 역사에서는 신종(神宗) 4년에 해당하는 해다. 이 시기 고려는 무신정권기 중에서도 최충헌이 권력을 장악하고 독재 체제를 굳건히 다지던 때였다. 1196년 이의민을 제거하고 정권을 잡은 최충헌은 명종을 폐위시키고 신종을 옹립한 뒤, 반대파를 지속적으로 숙청하며 자신의 정치적, 군사적 기반을 공고히 했다. 1201년 무렵 최충헌은 국정 전반을 쥐락펴락하는 절대 권력자로서의 위치를 확립하고 있었으며, 왕권은 철저히 무력화된 상태였다.

아시아 역사에서 1201년은 몽골 제국의 형성 과정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분수령이 되는 해다. 당시 몽골 초원을 통합해 나가던 테무친(훗날의 칭기즈 칸)의 세력이 커지자, 이에 위협을 느낀 타타르, 타이치우트 등 십여 개의 초원 부족이 연합하여 테무친의 오랜 안다(의형제)이자 라이벌인 자무카를 '구르칸(Gurkhan, 보편적인 군주)'으로 추대했다. 그러나 테무친은 옹 칸이 이끄는 케레이트 부족과 동맹을 맺고 이들 연합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투를 통해 테무친은 초원의 강력한 경쟁자였던 자무카의 세력을 크게 약화시키고 몽골 통일의 주도권을 완전히 쥐게 되었다.

유럽에서는 제4차 십자군 원정의 준비가 본격화되었다. 교황 인노첸시오 3세의 호소로 조직되기 시작한 제4차 십자군은 원래 이슬람 세력의 중심지인 이집트 공략을 목표로 삼았다. 1201년 십자군 지도부는 병력 수송과 보급을 해결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해양 도시국가인 베네치아 공화국과 대규모 선박 임대 및 수송 계약(베네치아 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십자군은 계약된 만큼의 인원과 자금을 모으지 못했고, 이로 인해 발생한 막대한 빚은 훗날 십자군이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기독교 도시인 자다르와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하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이 외에도 주변국의 상황을 살펴보면, 중국 대륙에서는 남송(南宋)의 영종(寧宗)과 금(金)나라의 장종(章宗)이 통치하며 남북 대치 상황을 이어가고 있었다. 금나라는 이 시기 문화적, 경제적인 번영을 누리고 있었으나 북방 유목민의 성장이 서서히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일본은 가마쿠라 막부 시대로, 초대 쇼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사망한 이후 그의 아들 미나모토노 요리이에가 2대 쇼군으로 취임하여 초기 막부 체제를 이끌어가는 중이었다. 이처럼 1201년은 각 문화권에서 기존 체제의 유지와 새로운 권력의 부상이 교차하는 역사적 전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