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2년은 일본 역사에서 중세 무사 정권의 시작을 알리는 결정적인 해로 기록된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조정으로부터 정이대장군에 임명되면서 가마쿠라 막부가 공식적으로 출범하였다. 이를 통해 일본은 천황 중심의 고대 국가 체제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통치권이 무사 계급인 막부로 넘어가는 대전환을 맞이하였다. 가마쿠라에 근거지를 둔 이 정권은 이후 수백 년 동안 이어질 일본 막부 정치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중동과 유럽의 역사에서는 제3차 십자군 전쟁이 마무리된 해이다. 잉글랜드의 국왕 리처드 1세와 아이유브 왕조의 살라딘은 오랜 전투 끝에 야파 조약을 체결하며 휴전에 합의하였다. 이 조약에 따라 예루살렘은 이슬람 세력의 통제하에 남게 되었으나, 기독교 순례자들의 성지 방문은 보장받는 타협안이 도출되었다. 전쟁을 마친 리처드 1세는 귀국길에 올랐으나, 오스트리아 공작 레오폴트 5세에 의해 감금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인도 아대륙에서는 역사적 흐름을 바꾼 중요한 전투가 발생하였다. 구르 왕조의 무함마드 고리는 제2차 타라인 전투에서 라지푸트 연맹체의 프리트비라지 차우한을 격파하고 승리를 거두었다. 이 승리는 북인도 지역에 이슬람 세력이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델리 술탄 왕조가 수립되는 정치적 배경이 되었다. 이로 인해 인도의 종교적, 문화적 지형은 이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고려 시대였던 한반도에서는 무신정권의 통치가 이어지고 있었다. 당시 최고 권력자는 이의민이었으며, 무신들의 권력 쟁탈전과 가혹한 수탈로 인해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된 상태였다. 이러한 사회적 불안과 민생고는 훗날 발생하는 대규모 농민 봉기의 원인이 되었으며, 지방 곳곳에서는 민중들의 저항이 태동하고 있었다. 고려 조정은 대내적인 혼란 속에서 문벌 귀족 체제 붕괴 이후의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지 못한 채 진통을 겪고 있었다.
유럽 대륙 전역에서는 봉건 제도가 공고화되는 가운데 성곽 건축과 기사 문화가 정점에 달했다. 경제적으로는 상업이 서서히 발달하며 도시가 성장하기 시작했고, 대학의 기원이 되는 교육 기관들이 정비되면서 학문적 발전의 토대가 마련되던 시기였다. 1192년은 이처럼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기존의 권력 구조가 재편되거나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며 중세사의 주요한 흐름을 형성한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