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0년은 12세기의 중엽으로 접어드는 시기로, 유럽과 아시아 전역에서 정치적 격변과 왕조의 변화가 두드러진 해였다. 서유럽에서는 시칠리아 왕국의 성립이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꼽힌다. 시칠리아의 로제르 2세는 대립교황 아나클레투스 2세의 지지를 받아 시칠리아 국왕으로 즉위하며 지중해의 강력한 해상 국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는 노르만족의 이탈리아 남부 지배가 공고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시칠리아는 이후 다문화가 공존하는 중세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로마 가톨릭 교회 내부에서는 심각한 분열이 발생했다. 교황 호노리오 2세가 사망한 후, 후임 교황 선출 과정에서 인노첸시오 2세와 아나클레투스 2세가 동시에 선출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이중 선출로 인한 교황 분열은 유럽 정치권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신성 로마 제국과 프랑스, 영국 등 각국 왕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지지하는 교황을 달리했다. 성 베르나르두스와 같은 유력한 수도원 지도자들이 인노첸시오 2세를 지지하며 분열을 종식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갈등은 수년간 지속되었다.
동아시아에서는 금나라와 남송 사이의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특히 1130년에는 한세충이 이끄는 송나라 군대와 완안종필(올출)이 이끄는 금나라 군대가 장강의 황천탕에서 맞붙은 황천탕 전투가 발생했다. 비록 금나라 군대가 포위망을 뚫고 퇴각에는 성공했으나, 이 전투는 송나라 수군의 저력을 입증하고 금나라의 대규모 남진을 저지하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 이 시기 남송은 임안(항저우)을 사실상의 수도로 삼아 정권의 안정을 꾀하며 금나라와의 장기적인 대치 국면에 들어섰다.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이슬람 세력의 판도 변화가 일어났다. 무와히드 왕조의 사상적 기초를 닦은 이븐 투마르트가 이 해에 사망했다. 그의 사후 아브드 알 무민이 후계자로 추대되면서 무와히드 운동은 단순한 종교 개혁 운동을 넘어 강력한 군사력을 갖춘 국가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는 기존의 무라비트 왕조를 위협하며 서부 이슬람 세계의 주도권이 교체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이후 안달루스 지역의 역사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문화적 측면에서 1130년 전후의 유럽은 로마네스크 양식이 정점에 달해 있었다. 수도원을 중심으로 한 학문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으며, 스콜라 철학의 초기 형태가 정립되기 시작했다. 또한 십자군 전쟁을 통해 유입된 비잔티움과 이슬람의 지식은 유럽의 지적 토양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이 시기 건설된 수많은 성당과 수도원들은 중세 유럽의 종교적 열망과 건축 기술의 발전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