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4년은 고려 제17대 국왕 인종이 재위한 지 3년째 되는 해였다. 당시 고려의 정치는 인종의 외조부이자 장인인 이자겸이 권력을 독점하던 시기였다. 이자겸은 자신의 가문인 경원 이씨의 위세를 배경으로 국정을 장악하였으며, 이는 왕권과 외척 세력 간의 잠재적인 갈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국내적으로는 문벌 귀족 사회의 폐단이 점차 드러나며 사회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동아시아 전체의 정세는 금나라의 부상과 요나라의 쇠퇴로 인해 급격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금나라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요나라의 마지막 거점들을 압박하고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요나라의 황족이었던 야율대석은 세력을 이끌고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는 훗날 중앙아시아에 서요(카라 키타이)가 건국되는 시초가 되었다. 북송은 금나라와 연합하여 요나라를 견제하려 했으나, 오히려 금나라의 세력 팽창에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서유럽에서는 종교적, 정치적 지도권의 변화가 일어났다. 1124년 12월 13일,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황 갈리스토 2세가 선종하였다. 갈리스토 2세는 보름스 협약을 통해 서임권 투쟁을 일단락 지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뒤를 이어 12월 21일에는 호노리오 2세가 제163대 교황으로 즉위하였다. 또한 스코틀랜드에서는 알렉산더 1세가 사망하고 그의 동생인 데이비드 1세가 왕위에 올라 스코틀랜드의 봉건 제도와 행정 체계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중동 지역에서는 십자군 전쟁의 흐름 속에서 중요한 군사적 사건이 발생했다. 1124년 7월 7일, 예루살렘 왕국과 베네치아 공화국의 연합군은 장기간의 포위 공격 끝에 전략적 요충지인 티레(Tyre)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티레의 함락은 십자군 국가들이 레반트 해안의 주요 항구 도시들을 장악함으로써 해상 보급로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슬람 세력에게는 큰 타격을 주었다.
이 시기 인류 사회는 전반적으로 중세 성기의 정점에 도달해 있었다. 유럽에서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이 정교해지고 있었으며,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교역로를 통해 상업적 교류가 지속되었다. 각 지역의 제국들과 왕국들은 내부적인 체제 정비와 외부 세력의 침입에 대응하며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켜 나갔으나, 대외적인 영토 분쟁과 권력 투쟁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