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9는 1108보다 크고 1110보다 작은 자연수이다. 수학적으로는 1과 자기 자신만으로 나누어떨어지는 소수(Prime Number)에 해당하며, 소수 계량 함수에 따르면 186번째 소수이다. 또한 1109는 두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없는 홀수이며, 십진법상에서 각 자릿수의 합이 11이 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서기 1109년은 고려 예종 4년에 해당하는 시기이다. 이 해는 고려의 대외 관계와 국방 정책에서 중대한 결정이 내려진 시점이다. 윤관이 여진족을 정벌하고 동북 지역에 축조했던 동북 9성을 여진족에게 다시 반환하고 군대를 철수시킨 해가 바로 1109년이다. 이는 여진족의 끊임없는 침입과 성을 유지하는 데 드는 막대한 물적, 인적 비용, 그리고 조정 내의 반대 여론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서양 중세사에서 1109년은 제1차 십자군 전쟁 이후의 정세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해이다. 십자군 세력은 7년간의 장기 포위 끝에 트리폴리를 함락시켰으며, 이를 통해 트리폴리 백국이 공식적으로 건국되었다. 이는 성지에 세워진 주요 십자군 국가 중 마지막으로 형성된 국가로, 지중해 동부 연안의 전략적 요충지를 확보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신학과 철학 분야에서는 '스콜라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캔터베리의 안셀무스가 1109년 4월 21일에 타계했다. 그는 신의 존재를 이성적으로 증명하고자 노력한 인물로, 그의 본체론적 증명은 후대 서양 철학사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의 사후 캔터베리 대주교직은 한동안 공석으로 남게 되었으며, 이는 당시 영국 왕권과 교황권 사이의 서임권 투쟁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중국 역사에서는 북송의 휘종 재위기인 대관 3년에 해당한다. 이 시기의 북송은 문예와 예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문화적 전성기를 구가했으나, 내부적으로는 관료들의 부패와 당쟁이 심화되고 있었고 북방에서는 요나라의 세력이 약화되는 틈을 타 여진족의 금나라가 부상할 기틀을 마련하고 있었다. 이는 훗날 정강의 변으로 이어지는 북송 멸망의 전조가 형성되던 시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