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8년은 서기 12세기의 초반부에 해당하는 평년으로, 율리우스력으로는 수요일에 시작되었다. 이 시기는 동아시아에서는 고려와 요나라, 그리고 발흥하기 시작한 여진족 간의 세력 재편이 이루어지던 시기였으며, 유럽에서는 십자군 전쟁 이후의 영토 분쟁과 중앙집권적 왕권의 강화가 동시에 진행되던 격동의 시대였다.
고려사에서 1108년은 윤관의 동북 9성 축조와 여진 정벌이 정점에 달했던 해로 기록된다. 전년도인 1107년부터 여진 정벌에 나섰던 윤관과 오연총의 고려군은 점령지에 영주, 웅주, 복주, 길주 등 6개의 성을 먼저 쌓았고, 예종 3년인 1108년에 이르러 의주, 통태진, 평융진 등에 추가로 성을 쌓아 이른바 동북 9성을 완성했다. 그러나 9성을 유지하기 위한 여진족의 끊임없는 반격과 막대한 군사적 비용, 그리고 점령지 관리의 어려움으로 인해 조정 내부에서는 성의 존치 여부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기도 했다.
유럽에서는 프랑스 왕실의 권력 교체가 일어났다. 1108년 7월 29일, 카페 왕조의 필리프 1세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인 루이 6세가 프랑스의 국왕으로 즉위했다. 루이 6세는 재위 기간 동안 파리 주변의 왕실 직할령을 위협하던 반항적인 봉건 영주들을 제압하고 왕권의 기반을 공고히 다졌다. 이는 훗날 프랑스가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기틀이 되었으며, 그는 '비대왕' 혹은 '투사왕'이라는 별칭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비잔티움 제국과 십자군 세력 간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외교적 진전이 있었다. 안티오키아 공국의 보에몽 1세는 비잔티움 황제 알렉시우스 1세 콤네누스와 데볼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은 보에몽이 제국에 대항해 벌인 전쟁에서 패배한 결과로 맺어졌으며, 안티오키아를 비잔티움 제국의 봉토로 규정하고 보에몽이 황제의 가신이 될 것을 명시했다. 비록 이 조약이 실제 현장에서 완벽하게 이행되지는 않았으나, 비잔티움 제국이 십자군 국가들에 대해 종주권을 주장하는 중요한 법적 근거가 되었다.
일본에서는 헤이안 시대 후기인 가쇼 3년에서 덴닌 원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이 해에 미나모토노 요시치카가 규슈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조정의 명을 받은 다이라노 마사모리에 의해 진압되었다. 이 사건은 세이와 겐지의 세력이 약화되고 간무 헤이시 세력이 조정의 신임을 얻으며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장차 일본 중세 무사 정권이 탄생하게 되는 가문 간의 세력 구도 변화를 암시하는 사건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