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년은 11세기가 끝나고 12세기가 시작되는 해로, 중세 유럽과 아시아 전역에서 중요한 정치적 전환점과 문화적 변화가 일어난 시기이다. 제1차 십자군 전쟁의 여파로 중동 지역에는 기독교 국가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으며, 서유럽에서는 왕권의 교체와 법적 토대의 마련이 이루어졌다. 동아시아에서는 고려와 송나라에서 새로운 통치 체제와 문화적 발전이 전개되었다.
잉글랜드 왕국에서는 8월 2일 국왕 윌리엄 2세가 뉴포레스트에서 사냥 도중 의문의 화살에 맞아 사망했다. 그 뒤를 이어 막내 동생인 헨리 1세가 8월 5일 즉위했다. 헨리 1세는 즉위 직후 '자유 헌장(Charter of Liberties)'을 반포하여 전임 왕들의 학정을 비판하고 교회와 귀족의 권리를 보장할 것을 약속했다. 이는 훗날 마그나 카르타의 선구적인 모델이 되었으며, 잉글랜드 국왕의 권한을 법적으로 제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중동 지역에서는 제1차 십자군의 지도자이자 예루살렘의 수호자였던 고드프루아 드 부용이 7월에 사망했다. 그의 동생인 에데사의 보두앵이 예루살렘으로 이동하여 성탄절인 12월 25일에 예루살렘 왕국의 첫 번째 국왕인 보두앵 1세로 즉위했다. 이로써 십자군 국가는 단순한 군사적 점령지를 넘어 정식 왕국의 체제를 갖추게 되었으며, 레반트 지역에 기독교 세력의 교두보가 확립되었다.
동아시아의 송나라에서는 철종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그의 동생인 휘종이 황제로 즉위했다. 휘종은 예술과 문화 방면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으나, 정치적으로는 환관들에게 의존하고 대외 정책에서 실책을 범해 훗날 북송의 멸망을 초래하는 배경을 만들기도 했다. 한편 고려에서는 숙종 재위기인 이 해에 서적업(書籍業)을 설치하여 유교 경전과 역사서의 간행을 장려함으로써 관학의 진흥과 국가 차원의 학문 발전을 도모했다.
1100년은 전 세계적으로 중세 봉건제의 심화와 중앙 집권적 체제 정비가 교차하던 시기였다. 유럽에서는 상업의 부활과 함께 도시 성장의 기반이 닦였으며, 종교적으로는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이 확대되며 세속 권력과의 투쟁과 협력이 병행되었다. 이러한 변화들은 12세기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중세의 전성기로 이어지는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