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2년은 11세기에 속하는 평년으로, 서기 기원을 기준으로 율리우스력 상 토요일에 시작되었다. 이 시기는 전 세계적으로 중세 성기(High Middle Ages)에 해당하며, 동양과 서양 모두 각기 다른 정치적 변혁과 문화적 발전을 겪고 있었다. 동아시아에서는 고려와 송나라가 밀접한 교류를 이어갔고, 유럽과 중동에서는 제국 간의 갈등과 종교적 영향력이 교차하며 역사의 흐름을 형성하던 시기였다.
한반도의 고려 왕조에서는 문종 36년에 해당한다. 문종은 재위 기간 동안 유교적 정치 체제를 정비하고 불교 문화를 장려하여 고려의 황금기를 이끈 군주였다. 1082년 무렵 고려는 문종의 통치 아래 국가의 기틀이 공고히 다져져 있었으며, 대각국사 의천이 불교 경전을 수집하고 교단을 통합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었다. 고려는 북송과의 외교적 관계를 통해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동시에 요나라(거란)와의 관계도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동북아시아의 세력 균형을 유지했다.
중국의 북송에서는 신종(神宗)의 재위기였으며, 왕안석의 신법(新法)이 시행되던 시기의 막바지였다. 1082년에는 서하(西夏)와의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는데, 특히 영락성(永樂城) 전투에서 송나라 군대가 서하군에 대패하며 막대한 인명 피해와 물자 손실을 입었다. 이 참패는 신종의 개혁 의지에 큰 타격을 주었으며, 이후 송나라의 대외 정책과 내부 정치 지형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서양에서는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알렉시우스 1세 콤네누스가 제국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1082년, 알렉시우스 1세는 노르만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베네치아 공화국의 해군력을 빌리는 대가로 중요한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금인칙서)을 통해 베네치아는 비잔티움 제국 전역에서 면세 특권과 상업적 이권을 보장받았으며, 이는 훗날 베네치아가 지중해의 해상 강국으로 성장하는 결정적인 발판이 됨과 동시에 제국의 경제적 주권을 약화시키는 양날의 검이 되었다.
신성 로마 제국에서는 하인리히 4세와 교황 그레고리오 7세 사이의 서임권 투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하인리히 4세는 로마를 포위하고 대립 교황을 세우는 등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군사적, 정치적 행보를 이어갔다. 한편, 이슬람 세계에서는 셀주크 튀르크가 말리크 샤 1세의 치하에서 영토를 확장하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이처럼 1082년은 세계 각지에서 중앙 집권적 권력의 강화와 국가 간의 전략적 동맹, 그리고 대규모 군사적 충돌이 복합적으로 일어난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