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5

1055년은 11세기의 중엽에 해당하는 평년으로, 율리우스력으로는 일요일에 시작된 해다. 이 해는 중세 유럽과 이슬람 세계, 그리고 동아시아 전반에서 중요한 정치적 변동과 체제 정비가 일어난 시기였다. 특히 중동 지역에서는 셀주크 튀르크의 부상이 두드러졌으며,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황실의 계승 문제가 발생하여 제국의 정세에 영향을 미쳤다. 동아시아의 고려와 송나라에서는 문치주의적 안정이 지속되며 문화적 발전이 이루어졌다.

이슬람 세계에서 1055년은 역사적인 전환점을 맞이한 해로 기록된다. 셀주크 제국의 창건자인 투으룰 벡이 바그다드에 입성하여 당시 도시를 지배하던 부와이 왕조의 세력을 축출했다. 아바스 왕조의 칼리파 알 카임은 투으룰 벡을 환대하며 그에게 '동방과 서방의 왕'이라는 칭호와 함께 '술탄'의 지위를 공식적으로 부여했다. 이를 통해 실질적인 군사적, 정치적 실권이 아랍계에서 튀르크계 세력으로 완전히 넘어갔으며, 이는 이슬람 역사에서 셀주크 시대를 본격적으로 여는 계기가 되었다.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1월 11일에 황제 콘스탄티누스 9세 모노마쿠스가 서거했다. 그의 사후 마케도니아 왕조의 마지막 혈통인 테오도라가 70세의 고령으로 여제에 즉위하여 단독 통치를 시작했다. 테오도라는 짧은 통치 기간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며 정부 관료제를 정비하고 정치적 반대파를 숙청하는 등 제국의 내부 결속을 꾀했다. 그녀의 통치는 마케도니아 왕조의 종말을 앞둔 마지막 안정기로 평가받는다.

동아시아의 고려 왕조에서는 문종 9년에 해당하는 해였다. 문종은 이 시기 유교적 통치 이념을 바탕으로 법률과 제도를 정비하며 고려의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1055년에도 고려는 요나라와 안정적인 외교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송나라와의 경제적·문화적 교류를 통해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특히 문종은 교육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국자감을 정비하고 사학이 융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고려의 학문적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

서유럽에서는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참회왕 치세 하에서 권력 투쟁이 전개되었다. 머시아의 백작 엘프가르가 반역 혐의로 추방당했으나, 그는 웨일즈의 군주 그리피드 압 루엘린과 동맹을 맺고 세력을 모아 다시 잉글랜드로 진격했다. 이 갈등은 결국 엘프가르가 자신의 영지와 지위를 회복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으나, 이는 당시 잉글랜드 왕실의 통제력이 귀족 세력에 의해 도전받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처럼 1055년은 세계 각지에서 기존 질서의 변화와 새로운 권력 구조의 형성이 동시에 진행된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