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4년은 11세기의 평년으로, 수요일에 시작된 서기 연도이다. 이 시기는 동아시아의 정세 변화와 동남아시아의 통일 왕조 탄생, 그리고 유럽의 교황권 혼란 등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이 중첩된 시기였다. 각 지역의 국가들은 영토를 공고히 하거나 내부적인 체제 개편을 통해 중세 사회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주력했다.
고려 왕조에서는 제10대 국왕 정종의 재위 10년 차를 맞이한 해였다. 이해의 가장 큰 업적은 1033년부터 추진해 온 천리장성 축조 사업이 마무리된 것이다. 압록강 어귀에서 동해안의 도련포에 이르는 이 거대한 방어선은 거란과 여진 등 북방 민족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저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설되었다. 또한 정종은 노비종모법을 시행하여 노비의 신분을 어머니의 계보를 따르게 함으로써 사회 계층 질서를 정비하고자 했다.
중국 대륙의 북송은 서하와의 오랜 분쟁을 종결짓기 위해 '경력화의'를 체결했다. 이 조약을 통해 북송은 서하에 매년 은, 비단, 차를 세폐로 제공하는 대신 형식적인 군신 관계를 맺고 국경의 평화를 얻었다. 이는 북송에 경제적 부담을 안겨주었으나, 접경 지역의 전쟁을 멈추고 내부 안정을 꾀하는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범중엄을 중심으로 한 정치 개혁인 '경력신정'이 전개되며 관료 제도의 쇄신과 민생 안정이 추진되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미얀마 역사상 최초의 통일 국가인 바간 왕조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아노라타 왕이 즉위하여 흩어져 있던 부족 세력들을 통합하고 강력한 중앙 집권 국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는 상좌부 불교를 국교로 수용하여 국가적 단결을 꾀했으며, 이는 미얀마의 종교적, 문화적 정체성이 형성되는 결정적인 토대가 되었다. 아노라타의 통치는 이후 동남아시아 대륙부 정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
유럽에서는 가톨릭 교회의 교황권을 둘러싼 극심한 혼란이 빚어졌다. 교황 베네딕토 9세가 반대파에 의해 쫓겨나고 실베스테르 3세가 즉위하는 등 교황위의 정통성 문제가 불거졌다. 이러한 혼란은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의 간섭과 교회 개혁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콘스탄티누스 9세가 재위하며 문화적 전성기를 구가했으나, 외부적으로는 페체네그족의 침입과 내부적인 군사력 약화로 인해 제국의 위기가 서서히 고조되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