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2년은 11세기 중반에 해당하는 시기로, 유럽과 아시아 전역에서 왕조의 교체와 세력 확장이 빈번하게 일어난 해였다. 서유럽에서는 잉글랜드의 데인 왕조가 막을 내리고 웨섹스 왕조가 복원되었으며,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새로운 황제가 즉위하여 통치 체제를 재정비했다. 동아시아에서는 고려와 송나라가 주변 북방 민족들과의 외교적, 군사적 긴장 상태를 유지하며 내부적인 안정을 꾀하던 시기였다.
잉글랜드에서는 6월 8일 국왕 하르데크누트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데인인의 지배가 종료되었다. 그 뒤를 이어 에드워드 참회왕(Edward the Confessor)이 즉위함으로써 웨섹스 가문의 통치가 복구되었다. 에드워드의 즉위는 잉글랜드의 정치적 중심이 다시 앵글로색슨 전통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나, 동시에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노르망디와의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여 훗날 1066년 노르만 정복의 원인이 되는 배경을 제공하기도 했다.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황후 조에와 그녀의 여동생 테오도라의 공동 통치가 이루어지던 중, 조에가 콘스탄티누스 9세 모노마코스와 세 번째 결혼을 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같은 해 6월 콘스탄티누스 9세는 황제로 즉위하여 제국의 행정과 군사적 정비에 나섰다. 그러나 그의 치세는 귀족 세력의 발호와 군사비 지출의 증가로 인해 제국의 장기적인 쇠락을 초래하는 시발점이 되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기도 한다.
동아시아의 정세를 살펴보면, 송나라는 서하(西夏)와의 전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1042년 송나라 군대는 정천(定川) 전투에서 서하군에게 대패하며 국방상의 위기를 맞이했다. 이에 송나라는 서하와 평화 협상을 추진하는 한편, 북쪽의 요나라가 이 틈을 타 영토를 요구하자 세폐를 증액하는 조건으로 이른바 '중희증폐(重熙增幣)'를 단행하여 대규모 전쟁을 회피하려 했다.
고려에서는 제10대 국왕 정종(靖宗)의 치세가 이어지고 있었다. 정종은 북방 민족인 거란과 여진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성곽을 보수하고 군사 훈련을 강화하는 등 국방력 강화에 힘썼다. 특히 이해에는 동북방의 여진족들이 대거 귀순해 오거나 조공을 바치는 등 변방의 안정을 꾀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지속되었다. 이처럼 1042년은 세계 각국이 권력의 재편과 외세의 압박 속에서 생존과 번영을 모색하던 격동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