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8년은 동아시아 정세에서 중대한 전환점이 된 해이다. 탕구트족의 지도자 이원호가 대하(大夏), 즉 서하(西夏)를 건국하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송나라로부터 부여받은 관작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며 중원 왕조와 대등한 관계임을 선언했다. 이는 기존의 송과 요나라 중심의 양강 체제를 무너뜨리고 삼국이 대립하는 새로운 국제 질서를 형성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서하의 건국과 함께 이원호는 국가적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시행했다. 그는 한자의 구조를 참조하면서도 독창적인 형태를 가진 서하 문자를 제정하여 공포했으며, 관제와 복식 등을 서하 고유의 방식으로 정비했다. 이러한 독자 노선은 송나라와의 외교적 마찰을 심화시켰으며, 결국 1040년부터 본격화되는 송-서하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한반도의 고려 왕조에서는 제10대 국왕 정종(靖宗)의 치세가 이어지고 있었다. 고려는 거란의 침입을 물리친 이후 국방력 강화에 주력하던 시기로, 1033년부터 시작된 천리장성 축조 공사가 1038년에도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 정종은 북방 민족의 재침입에 대비해 압록강 하구에서 동해안에 이르는 방어선을 구축하는 데 힘을 쏟았으며, 내부적으로는 불교를 장려하고 중앙 집권 체제를 공고히 하는 정책을 펼쳤다.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셀주크 튀르크의 부상이 두드러진 해였다. 셀주크 가문의 투으룰 벡은 1038년 니샤푸르를 점령하고 스스로를 술탄으로 선포하며 셀주크 제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는 가즈나 왕조의 쇠퇴와 맞물려 이슬람 세계의 권력 구조를 재편하는 중요한 사건이었으며, 훗날 중동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는 발판이 되었다.
유럽에서는 헝가리 왕국의 기틀을 세운 초대 국왕 이슈트반 1세가 이 해에 사망했다. 그는 헝가리를 기독교 국가로 전환하고 행정 구역을 정비하여 국가의 기틀을 잡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슈트반 1세의 사후 헝가리는 후계 구도를 둘러싼 내부 갈등과 권력 투쟁의 시기로 접어들게 되었으며, 이는 중앙유럽 정세에 영향을 미쳤다. 한편 비잔티움 제국은 미카엘 4세의 통치 하에서 시칠리아 재정복을 위한 군사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