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형 유보트(Type I U-boat)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나치 독일의 크릭스마리네(Kriegsmarine)가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하고 재무장을 선언한 뒤 처음으로 건조한 원양 작전용 잠수함이다. 독일 해군 재건 계획의 일환으로 1930년대 중반에 개발되었으며, 공식적으로는 단 2척(U-25, U-26)만이 건조되었다. 이 모델은 독일이 네덜란드에 설립한 위장 기업인 IvS(Ingenieurskantoor voor Scheepsbouw)가 스페인 해군을 위해 설계했던 E-1급 잠수함을 기반으로 개량한 것이다.
설계 측면에서 1형 유보트는 연안 방어용이었던 소형 2형(Type II) 유보트와 달리, 대서양으로 진출하여 통상파괴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했다. 배수량은 부상 시 약 862톤, 잠항 시 약 983톤이었으며, 함수에 4문, 함미에 2문의 어뢰 발사관을 장착하여 당시로서는 준수한 화력을 보유했다. 또한 갑판에는 10.5cm 함포를 탑재하여 부상 상태에서의 교전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실전 운용 결과 1형 유보트는 기계적, 구조적으로 많은 결함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선체의 안정성이 부족하고 조종이 매우 까다로웠으며, 긴급 잠항에 걸리는 시간이 느려 적의 항공기나 구축함의 공격에 취약했다. 또한 좁은 선내 공간과 엔진의 신뢰성 문제 등은 승조원들의 작전 효율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성능상의 한계로 인해 독일 해군 사령부는 1형 유보트의 추가 건조를 취소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량된 후속 모델 개발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건조된 두 척의 유보트인 U-25와 U-26은 초기에는 주로 훈련용으로 사용되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직후 유보트 수량이 부족했던 독일 해군의 사정으로 인해 실전에 투입되었다. 구조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전쟁 초기에 기뢰 부설 및 상선 공격 임무에서 일정한 전과를 올렸다. U-25는 1940년 북해에서 기뢰 부설 작전 중 아군 기뢰에 접촉하여 침몰한 것으로 추정되며, U-26은 같은 해 7월 영국 해군의 폭뢰 공격을 받고 파손된 뒤 승조원들에 의해 자침되었다.
비록 1형 유보트는 그 자체로 성공적인 잠수함은 아니었으나, 독일 잠수함 기술 발전에 있어 중요한 과도기적 역할을 수행했다. 1형의 설계와 운용 경험은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독일 해군의 주력이 되는 7형(Type VII) 유보트와 장거리 작전용인 9형(Type IX) 유보트 개발의 직접적인 기술적 토대가 되었다. 즉, 1형은 실패한 프로토타입이라기보다는 차세대 주력 잠수함을 완성하기 위한 필수적인 실험대였다고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