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 온(Hussein Onn, 1922~1990)은 말레이시아의 제3대 총리로, 1976년부터 1981년까지 재임하였다. 그는 말레이시아의 독립 운동가이자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의 창립자인 온 자파르의 아들로 조호르바루에서 태어났다. 국가의 단합과 인종 간 화합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정책을 추진했기에 말레이시아 내에서 '통합의 아버지(Bapa Perpaduan)'라는 칭호로 추대받는 인물이다.
그는 정계에 입문하기 전 군인으로서 경력을 쌓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인도 육군에 입대하여 복무했으며, 종전 후에는 영국으로 건너가 법학을 공부하고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였다. 이러한 군사적 배경과 법학 지식은 훗날 그가 국정을 운영함에 있어 규율과 법치주의를 중시하는 엄격하고 정직한 지도자상을 형성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1960년대 후반에 본격적으로 정치에 복귀한 그는 교육부 장관을 역임하며 공교육 체계 기틀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1973년 제2대 총리 툰 압둘 라작 체제에서 부총리로 임명되었으나, 1976년 툰 압둘 라작이 갑작스럽게 서거하면서 총리직을 승계하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지도부 공백 상황에서도 그는 냉철함을 유지하며 정국을 안정시켰다. 그는 전임 총리의 신경제정책(NEP)을 적극적으로 계승하여 말레이계 비미푸트라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동시에, 다인종 사회인 말레이시아 내에서 인종 간 경제적 격차를 줄이고 갈등을 봉합하는 데 주력하였다.
재임 기간 중 후세인 온은 공직 사회의 부패 척결에 매우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자신의 정당 내부 인사라 할지라도 비리에 연루되면 타협 없이 법적 책임을 묻는 단호한 태도를 취했다. 이러한 청렴한 국정 운영 방식은 말레이시아 정치권에 도덕적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는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내에서의 협력을 강화하며 지역 안보와 경제적 결속을 다지는 데 공헌하였다.
1981년 심장 질환 등 건강상의 이유로 총리직에서 사임하고 마하티르 모하마드에게 권력을 이양하였다. 퇴임 후에도 인권 보호 활동과 사회 복지 분야에서 자문 역할을 수행하며 명망을 유지했다. 그는 199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치료를 받던 중 사망하였으며, 사후 국립 묘지인 마캄 파흘라완에 안치되었다. 후세인 온은 오늘날까지도 원칙과 정직을 중시했던 말레이시아의 존경받는 국가 지도자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