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현순황후(孝賢純皇后, 1712년~1748년)는 청나라 제6대 황제인 건륭제의 첫 번째 황후이자 정실 부인이다. 만주 양황기(鑲黃旗) 출신의 부찰씨(富察氏)로, 아버지는 총관태감을 지낸 이영보(李榮保)이다. 1727년(옹정 5년) 당시 보친왕이었던 홍력(건륭제)과 혼인하여 적복진(嫡福晉)이 되었으며, 건륭제가 즉위한 후인 1737년에 정식으로 황후에 책봉되었다.
그녀는 검소하고 어진 성품을 지녔으며, 화려한 장식보다는 정성껏 만든 수공예품을 즐길 만큼 소박한 생활을 실천했다. 건륭제는 이런 그녀를 깊이 신뢰하고 사랑했으며, 효현순황후 또한 시어머니인 숭경황태후를 지극정성으로 모셔 황실 내부의 화합을 도모했다. 기록에 따르면 건륭제는 그녀를 자신의 유일한 정배(正配)이자 진정한 동반자로 여겼으며, 국사를 돌보는 와중에도 그녀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정서적 안정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효현순황후는 건륭제와의 사이에서 2남 2녀를 두었으나, 자녀들의 잇따른 죽음으로 큰 비극을 겪었다. 첫째 아들인 영련(永璉)은 건륭제가 즉위하자마자 밀건법에 의해 태자로 지명될 정도로 총애를 받았으나 9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이후 태어난 아들 영종(永琮) 역시 천연두로 인해 두 돌이 되기 전에 사망하면서 그녀는 깊은 슬픔에 빠졌다. 이러한 연이은 자녀의 상실은 그녀의 건강을 급격히 악화시키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1748년, 효현순황후는 건륭제를 수행하여 산둥 지방을 순행하던 중 덕주(德州) 부근의 배 위에서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죽음은 건륭제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으며, 건륭제는 그녀를 기리기 위해 장례를 유례없이 성대하게 치르고 생전에 그녀가 머물던 장춘궁을 서거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하게 했다. 또한 건륭제는 평생에 걸쳐 그녀를 그리워하며 수백 편의 애도 시를 지어 남겼는데, 이는 중국 역사상 황제가 아내를 위해 남긴 가장 방대하고 애절한 기록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효현순황후 사후 건륭제의 통치 스타일은 다소 엄격하고 냉혹하게 변화했다는 분석이 많다. 장례 절차에서 예법을 지키지 않은 관리들을 대거 숙청하거나 처벌하는 등 그녀의 죽음은 조정 전체에 큰 파장을 몰고 오기도 했다. 또한 그녀의 가문인 부찰씨는 그녀에 대한 황제의 변함없는 애정 덕분에 건륭 연간 내내 막강한 권세를 누렸으며, 남동생인 부항(傅恒)과 조카 복강안(福康安) 등은 청나라의 명신이자 장군으로 활약하며 가문의 전성기를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