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령옹주(和寧翁主, 1753년 ~ 1821년)는 조선의 제21대 국왕 영조의 서차녀로, 영조와 후궁 숙의 문씨(폐숙의 문씨)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이다. 영조의 딸들 중 12번째에 해당하며, 어머니인 문씨는 훗날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정조 즉위 후 폐출되고 사사되었으나 화령옹주는 왕녀의 지위를 유지하였다.
1753년(영조 29)에 태어난 화령옹주는 영조가 환갑을 앞둔 늦은 나이에 얻은 딸이었기에 부왕의 각별한 총애를 받았다. 1762년(영조 38) 화령옹주로 봉해졌으며, 1764년(영조 40) 청송 심씨 심정최의 아들인 심능건(沈能建)과 혼인하였다. 영조는 옹주의 혼례를 위해 가례청을 설치하게 하고 옷감과 장신구 등을 세심히 챙기는 등 지극한 관심을 보였다.
화령옹주의 남편 심능건은 청릉위(靑陵尉)에 봉해졌으나, 부부 사이의 생활이 항상 평탄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심능건은 옹주를 대하는 태도가 공손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영조에게 문책을 받거나 유배를 가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 복권되어 관직 생활을 이어갔으며,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 심의현과 딸 한 명을 두었다.
옹주의 생모인 숙의 문씨가 사도세자를 모함하고 왕실을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정조 즉위 후 처벌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화령옹주는 이복 오빠인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로부터 비교적 관대한 대우를 받았다. 이는 그녀가 직접적인 정치적 사건에 개입하지 않았고, 국왕의 고모라는 지위가 고려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화령옹주는 정조와 순조 대를 거치며 왕실의 어른으로 대접받다가 1821년(순조 21)에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순조는 고모인 화령옹주의 부고를 듣고 매우 슬퍼하며 예장(禮葬)을 명하였고, 직접 조문을 하여 예우를 다하였다. 그녀의 묘소는 남편 심능건과 합장되었으며, 현재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에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