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리카와 덴노(堀河天皇)는 일본의 제73대 천황으로, 휘는 다루히토(善仁)이다. 1079년 시라카와 덴노의 제2황자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후지와라노 켄시이다. 1086년 아버지인 시라카와 덴노가 양위함에 따라 불과 8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였다. 그의 재위 기간은 1087년부터 1107년까지였으나, 이는 일본 역사에서 본격적인 원정(院政) 정치가 시작되는 시기였기에 독자적인 통치력을 발휘하기보다는 과도기적 상황 속에 놓여 있었다.
즉위 초반에는 관례에 따라 외척인 섭정 후지와라노 모로자네가 정무를 보좌했으나, 실제 권력의 중추는 퇴위 후 상황(上皇)이 된 아버지 시라카와 법황에게 있었다. 시라카와 법황은 어린 천황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정치에 깊이 개입하였고, 국정을 자신의 거처인 '인(院)'에서 결정하는 원정 체제를 확립했다. 호리카와 덴노는 성인이 된 이후 관백들과 협력하여 직접 정무를 돌보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으나,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아버지의 권위에 눌려 실질적인 정치적 주도권을 쥐지는 못했다.
비록 정치적 실권은 미약했으나, 호리카와 덴노는 학문과 예술, 특히 와카(和歌)와 음악에 깊은 조예를 보인 문화 군주로 평가받는다. 그는 온화하고 사려 깊은 성품을 지녔으며 궁정 문화를 부흥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당대 최고의 가인들을 소집하여 《호리카와 백수(堀河百首)》라는 와카집을 편찬하게 했으며, 피리 연주에도 뛰어나 명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덕망과 문화적 업적 덕분에 당시 귀족 사회와 후대 역사가들 사이에서는 '말법 시대의 현주(賢主)'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호리카와 덴노는 1107년 29세의 젊은 나이로 붕어하였다. 그의 사후 황위는 아들인 토바 덴노가 계승하였다. 호리카와 덴노의 죽음은 시라카와 법황에게 있어 자신을 견제할 수 있는 조정 내의 구심점이 사라진 것을 의미했으며, 이후 시라카와 법황의 전제적인 권력 행사는 더욱 강화되었다. 그의 능은 현재 교토부 교토시 우쿄구에 위치한 노치노엔쿄지노미사사기(後圓教寺陵)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