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발(許橃, 1874~1955)은 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유학자이다.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공무(公武), 호는 판계(板溪)이다. 경상북도 안동군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으며, 퇴계 학맥을 계승한 영남 유림의 일원으로서 구국 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전통적인 유교 가치관을 바탕으로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하였으며, 안동 지역 독립운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1919년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허발은 안동 지역의 만세 시위를 지원하며 항일 투쟁에 나섰다. 그는 단순히 시위에 참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영남 지역 유림 세력을 결집하여 독립 청원서를 작성하고 이를 국제 사회에 알리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일제 경찰의 주요 감시 대상이 되었으나, 굴하지 않고 독립 자금 모집과 동지 포섭 등 비밀 결사 활동을 지속하였다.
허발의 대표적인 항일 활동 중 하나는 1925년에 발생한 제2차 유림단 사건(제2차 파리장서 사건)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는 김창숙(金昌淑) 등과 협력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고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특히 영남 지역 유림들을 설득하여 군자금을 모금하던 중 일제에 체포되어 모진 고초를 겪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는 옥고를 치렀으며, 이는 당시 보수적인 유림 사회가 항일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광복 이후 허발은 고향인 안동으로 돌아와 후진 양성과 유학 연구에 전념하였다. 그는 급변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전통 유학의 도덕적 가치를 지키고자 노력하였으며, 지역 사회의 질서를 바로잡는 데 힘썼다. 그의 학문적 성과와 독립운동의 기록을 담은 저술로는 『판계문집(板溪文集)』이 전해진다. 이 문집에는 그의 깊은 학식뿐만 아니라 조국 독립을 향한 결연한 의지와 고뇌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허발의 독립운동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으며, 이어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그는 안동의 명문가인 광산 허씨 가문의 선비로서 가문의 전통인 위정척사 정신을 실천적 항일 정신으로 승화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삶은 영남 유림이 시대적 과제인 민족 해방을 위해 어떻게 투신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