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韓)은 한국의 대표적인 성씨 중 하나로,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약 77만 명이 거주하고 있어 전체 성씨 인구 순위 11위를 차지하는 대성(大姓)이다. 한자로는 주로 나라 한(韓)을 사용하며, 드물게 한수 한(漢)을 쓰는 경우도 있으나 그 수는 극히 적다. 한국의 한씨는 오랜 역사를 가진 토착 성씨로 분류되며, 삼한(그중에서도 마한) 시대 혹은 고조선 유민과 관련된 기원 설화를 가지고 있다.
본관은 문헌상으로 100여 본이 전해지나, 현대에 실존하여 가계를 잇고 있는 한씨의 절대다수는 청주 한씨(淸州 韓氏)이다. 전체 한씨 인구의 약 85% 이상이 청주 한씨에 속하며, 이는 단일 본관 인구수로 볼 때 김해 김씨, 밀양 박씨, 전주 이씨, 경주 김씨, 경주 이씨 등에 이어 최상위권에 속하는 규모이다. 청주 한씨의 시조는 고려 개국공신인 한란(韓蘭)으로,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에 그와 관련된 유적과 제단이 보존되어 있다. 이외에 곡산 한씨(谷山 韓氏)가 있으나, 그 연원은 중국 송나라에서 귀화한 한 예(韓銳)로부터 시작되어 청주 한씨와는 기원을 달리한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한(韓)씨는 기(奇), 선우(鮮于) 성씨와 혈연적 기원을 공유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 세 성씨는 고조선의 왕족인 기자(箕子)의 후예를 자처하며, 역사적으로 '청주 한씨, 행주 기씨, 태원 선우씨'는 조상이 같으므로 서로 혼인하지 않는다는 통혼 금지 관습이 존재하기도 했다. 문헌에 따르면 고조선의 마지막 왕인 준왕(準王)이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남쪽으로 내려와 마한을 건국하고 스스로 한왕(韓王)이라 칭한 것에서 성씨가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는 족보상의 전승이며, 현대 역사학계에서는 이를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이기보다 가문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시조 전설의 일종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한씨 가문은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치며 수많은 고관대작과 왕비를 배출한 명문가로 명성을 떨쳤다. 특히 조선 시대에는 왕실과 잦은 국혼을 맺어 수많은 왕비를 배출했는데, 대표적으로 성종의 모친인 소혜왕후(인수대비), 예종의 정비인 장순왕후, 인조의 정비인 인열왕후 등이 청주 한씨 출신이다. 이러한 배경 덕분에 조선 전기에는 훈구파의 핵심 세력으로서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대표적인 역사적 인물로는 조선 전기 계유정난의 주역이자 세조의 최측근이었던 상당부원군 한명회, 조선 중기의 명필로 널리 알려진 석봉 한호, 일제강점기의 승려이자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였던 만해 한용운 등이 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도 한씨는 정계, 재계, 법조계, 문화계 등 다방면에서 많은 인재를 배출하며 그 위상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한(韓)씨와 발음은 같으나 한자가 다른 한(漢)씨는 중국계 귀화 성씨로 충주 한씨(忠州 漢氏) 등이 있으나, 인구수가 수백 명 단위로 매우 적어 통상적으로 한국에서 한씨라 함은 한(韓)씨를 지칭한다.